세진 SKM-1080 구입 및 사용기
최근 몇 개월간 필코 마제스터치(구형 청축 개조품)에 만족하면서 키보드를 잘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키감의 키보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새로 키보드를 덜컥 구입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체리 청축 클릭 스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눌러보지 못한 다른 키보드의 키감이 궁금해서였습니다. -_-a) 어떤 키보드를 사용해 볼까 고민하다 고른 것은 세진전자에서 만든 SKM-1080입니다.
양각 십자형의 체리나 음각 사각형의 알프스 스위치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내부까지 분해하여보고 싶지만, 후타바 스위치는 분해 후 재조립이 어렵다는 글을 보고 포기했습니다. 멀쩡하게 새로 산 키보드를 고장내고 싶지는 않거든요 ㅠㅠ 키보드매니아에 로키님께서 후타바 스위치를 분해하고 올리신 글이 있으니 스위치의 구조를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키보드매니아에서 내용을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다른 모든 곳에서 생산을 중단한 스위치를 아직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답게, 생김새도 '나는 키보드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고전적인 디자인입니다. 검은색으로 색을 통일한 제 컴퓨터와는 다소 맞지 않는 디자인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기는 합니다.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고전적인 디자인이라 윈도우 키조차 없어서 윈키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과, 케이블이 상당히 짧다는 점입니다. 저의 경우 윈키가 없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고, 연장 케이블을 같이 구매하였기 때문에 실사용을 해도 크게 불편한 점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키보드의 장점을 더 말하자면 이중사출 방식으로 제작된 키캡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사용하시는 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저는 두께가 두꺼우며 글씨가 선명하고 지워질 염려가 없는 이중사출 키캡을 선호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중사출 키캡은 제작비가 비싸고 제작과정에서 환경오염을 더욱 심하게 시키기 때문에 요즘은 잘 생산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키보드의 제작연도가 2007년 4월인 것으로 보아서는 그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설마 십몇년전에 키캡을 산더미처럼 만들어두고 계속 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_-a
사실 이 키보드를 구매하기 전에 세진에서는 이미 생산을 중단하고 만들어둔 물건만 팔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키보드 뒷면의 제조년월이 2007년 4월인 것을 보고 의외라서 조금 놀랐습니다. 의외로 꽤 최근까지 생산되고 있었거든요. 물론 세진전자 공식 홈페이지(현재 폐쇄)의 구입가능품목에서는 SKM-1080 모델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현재도 생산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계식 키보드 시장이 너무 작아 채산성이 맞지 않아 그냥 기존에 갖춰두었던 공정에서 소량만 생산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고전적인 키보드 형태와 희귀해진 후타바 스위치를 사용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ㅋ 윈키도 없고, 뒷면 설명란에 체신부 EMI 인증스티커(;;;)와 AT와 XT컴퓨터에서 사용 시 키보드 내 스위치 조정하는 법까지 그대로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면(물론 조정 스위치는 없었습니다만) 이러한 심증은 더욱 깊어져만 갑니다. 물론 그 덕분에 2008년 현재에 이런 형태의 키보드를 만날 수 있게 된 저는 즐겁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받아서 키보드를 타건했을 때는 '기계식 치고 이상하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 처음 리니어 키보드를 접하고 느꼈던 어색함과 비슷하지만 다른 종류의 어색함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찰칵찰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딱딱 구분감이 느껴지는 가벼운 체리 청축의 키감을 너무 좋아하고, 그 키보드를 주 키보드로 사용한 지 2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이것이 너무 손에 익어버린 탓이겠지요. 우선 처음 타건시에 든 느낌은 '생각보다 조용하다'와 '키감이 상대적으로 두리뭉실하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멤브레인 키보드를 만져보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처음에는 '멤브레인 키보드 같네?'라는 망언을 할 뻔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청축에 너무 적응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키감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집에 있는 키보드를 모두 꺼내어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청축의 때-_-를 벗기고 후타바를 다른 스위치들과 비교 타건해본 결과, 이것도 확실히 뛰어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감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후타바 스위치는 체리 청축이나 알프스 백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키압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처음 멤브레인이 생각났던 것도 기존에 사용하던 키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키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지고 있는 키보드와 비교하자면 알프스 오렌지축과 체리 흑축 사이의 키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키압이 높고 스위치의 구조 때문인지 키가 눌렸다 튕겨져 나올 때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다른 스위치가 '딱' 소리와 함께 '눌렸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나는 것에 비해 후타바 스위치는 그 부분이 약간 두리뭉실하네요. 그래서 아직 키보드에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건을 하다 보니 자꾸 바닥까지 힘을 주어 때리게 됩니다 ㅠㅠ 키보드를 받고 나서 대략 A4용지 3장 분량을 타이핑해 봤는데 상대적으로 조금 더 피곤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건 며칠 더 써 보고 손이 키보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판단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키보드를 타건할 때 발생하는 소리는 판단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알프스 백축을 타건할 때 들리는 철컹철컹하는 소리와 같이 크고 분명한 소리입니다. 하지만 이 키보드는 스위치의 특성과 두꺼운 키캡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습니다. 그렇다고 넌클릭이나 리니어 정도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하게 딱딱 끊어지는 소리는 아니지만 분명 스위치가 눌리면서 소리가 발생됩니다. 또, 타건시 큰 소음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의 다른 하나는 철로 된 보강판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이건 아직 제 타이핑 방법이 키보드에 맞춰지지 않아서 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정도 키보드를 사용하고 느낀 감상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세줄 요약 들어갑니다.
* 장점
1. 고전적인 디자인과 튼실한 내구성
2. 후타바 스위치를 사용하여 현재 생산되고 있는 유일한 키보드
3. 후타바 스위치와 철판보강을 통한 부드럽고 안정된 키감
* 단점
1. 예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발전이 없는 키보드 형태
2. 애매한 키감과 다소 높은 키압
3. 역시 애매하게 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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