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아리아 디 오리지네이션 (ARIA The ORIGINATION)


  ARIA The ANIMATION, NATURAL을 거쳐 ORIGINATION까지, 길었던 ARIA시리즈의 여정이 이제 마무리된 듯싶습니다. 원작은 만화라고 하는데, 역시 보지 못했기에 -_-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중심으로 간단히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ARIA The ORIGINATION은 총 13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Sketch Book ~full color'S~와 비슷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입니다. 흔히 치유계(癒し系)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에서 쓰이는 언어가 직역된 말이라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단어 자체의 쓰임도 좀 애매하고요. 하지만 단어의 느낌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기승전결의 구도를 따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다른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큰 긴장 없이 편안한 분위기로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말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분위기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고 이완을 가져다준다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 위의 간단한 설명으로 대충 ARIA The ORIGINATION이 어떤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인지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밑의 글을 읽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또한 막 이 작품을 보고 감상에 젖어계신 분도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 삐뚤어진 내용도 들어가 있어 산통을 깰 수도 있으니까요 -_-a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ARIA The ORIGINATION


1. 배경 줄거리

  ARIA The ORIGINATION은 주인공인 미즈나시 아카리(水無灯里)가 지구와는 다른 행성인 아쿠아의 도시 네오 베네치아에서 수상 관광을 담당하는 운디네가 되어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수상 관광이라고 하니 뭔가 어감이 딱딱하네요 ㅋ). 작품에서 인간들이 다른 행성을 개척하고, 기상을 제어하는 등 과학 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관광 도시인 네오 베네치아의 주 운송 수단은 수로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베네치아가 비효율적인 운송수단인 수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겠죠. 관광 도시니까요 -_-; 뭐 어딘가의 누구는 실용적인 이유로 대운하를 파야 한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이건 단순한 감상문이니까 일단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이와 같은 관광도시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면 운치가 없겠죠? 관광객을 위한 곤돌라는 전부 수작업으로 노를 저어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노를 저으며 관광객들에게 관광지를 안내해 주고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운디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운디네 중 혼자서 관광객을 안내할 수 있는 정식 허가를 받은 사람들을 프리마라고 부르는데, 주인공인 아카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이 프리마입니다. 이를 위해 스승인 프리마 아리시아(Alicia Floremce)와 ARIA Company에서 같이 생활하며, 친구이자 같은 프리마를 꿈꾸는 아이카(Aika S Granzchesta), 아리스(Arice Carroll)와 함께 연습하며 보내는 여러 이야기들이 서술됩니다. 이 외에도 아이카의 스승인 아키라(Akira E Ferrari), 아리스의 스승인 아테나(Athena Glory) 등 빼놓을 수 없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ARIA The ORIGINATION에서는 아이카, 아리스, 아리시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모두 다 쓰기는 어렵겠네요. 전작인 ARIA The ANIMATION과 ARIA The NATURAL을 보면 다른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개되어 있으니 이를 먼저 보는 것이 이야기 몰입도를 높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총평

  각 화는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을 띄고 있지만, 한 화마다 변하는 약간의 설정이 그다음 화에 반영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갑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주제는 위에서 말한 대로 '아카리의 프리마 승격 이야기'가 되지만, 각 화마다 그 화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두드러진 특징이겠네요. 사실 이와 같은 주제의 애니메이션은 흔히 성장만화라고도 불리며,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시에 주변부에 보조 줄거리가 배치되는 형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카리의 프리마 승격(물론 이도 감동스럽기는 합니다만)은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아가기 위해 설정해 둔 종착점의 형태로 나타나고, 각 화의 사소한 일상에서 나타나는 감동들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생각'등의 서적에 있는 여러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ARIA The ORIGINATION은 기존 시리즈들이 취한 사소한 일상 속의 여러 감동적이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계속 맞물려 돌아가며 본 주제의 종착역에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점에서 깔끔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합니다. 애초에 이런 작품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저가 애니메이션 특유의 정지화면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지나치게 미시적인 부분에 집착하며, 이야기의 유기성이 떨어지고 분위기가 산만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운문시를 보며 '논리적인 구조와 합리적 근거가 없다'라고 비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타당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하튼 가벼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 모음집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괜찮게 다가올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설정에 관한 헛소리

이 부분은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망칠 수 있는, 글쓴이의 삐딱한 시선이 가득 들어간 부분입니다. 그냥 하나의 좋은 이야기로 생각하고, 그 감동을 지니신 채로 마무리 짓고 싶은 분들은 밑의 글을 '절대로' 읽지 말아 주세요.


1) 운디네의 도제제도

  작중에서 수상 영업 종사자인 운디네가 혼자 영업을 하려면 프리마라는 일종의 '개인면허'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 개인면허는 곤돌라 협회에서 발부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실질적으로 운디네를 가르치는 프리마들의 인정을 받아 그들의 시험을 거치지 않으면 프리마가 될 수 없는 구조라고 보입니다. 스승이자 시험관인 프리마와 같이 살며 그들에게 수업을 받고 인정을 받는 이들의 모습은, 중·근대의 도제제도와 같은 형태입니다.

  물론 작중에서는 양자가 상호 의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지고는 있습니다만, 도제제도는 숙련공이 비숙련공의 노동을 기술을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대가로 착취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합니다. 먼 미래 우주로까지 진출한 인간들이 이러한 인력 개발의 형태를 지닌다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설정이네요. 이러한 관계에서는 프리마가 수련자인 페어, 싱글 운디네를 몸종 부리듯이 부려도 수련자 입장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죠. 물론 합리적으로 자격증 제도나 졸업제도를 통해 프리마가 된다는 설정에서는 이 작품과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설정을 도입한 것이겠고요. 하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제도가 아름답다고 미화되어 생각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경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초능력자들의 여유로운 생활

  작중 주인공인 아카리와 같이 프리마를 목표로 하는 친우인 아이카, 아리스는 사실 '여유로울 삶을 즐길 수밖에 없는' 설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 다 기초적인 의식주는 물론 상당 수준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카리는 유명한 개인 회사인 ARIA Company의 유일한 후계자이고, 아이카는 대규모 수상관광기업인 히메야(姫屋)의 승계자, 아리스는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역시 대기업인 Orange Planet에 특채된 인재입니다. 셋 다 자기 분야의 능력과 배경이 탄탄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이야기이죠. 이런 상황에서 여유로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젊은 나이에 벌써 남들보다 뛰어난 적성을 지니고 자신의 탄탄한 길에 서 있는 능력자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_- 어디선가 작품의 분위기에 몰입되어 가고 있던 감정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탄탄한 배경은 둘째 치고,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나아갈 길도 확실히 찾지 못하고,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자기 계발에 바쁜 현실과는 꽤 거리가 먼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작품에서 '홀로 외딴곳에 떨어져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카리'나 '히메야의 패권을 놓고 정적들과 암투를 벌이는 아이카', '젊은 나이부터 혹사당하는 아리스'따위를 그리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만…… 네 이래서 제가 삐뚤어졌다고 한 겁니다 ㄱ-


3) 곤돌라 산업의 미래

  작중에서 수상 안내를 하는 곤돌라 산업은 활황기의 고속 성장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프리마 제도를 통해 형성된 곤돌라 협회의 독과점 카르텔 안에서 각 회사들은 큰 경쟁을 할 필요 없이 손님을 유치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갑니다. 게다가 각 회사들의 카르텔 체제는 굉장히 단단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쟁사의 차세대 주자끼리 연습을 하고, 상대 기업을 마음대로 출입하는 행위를 하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아쿠아 행성의 개발이 완료되고 관광산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불경기가 찾아온다면 분명 지금 보이는 저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경기에 민감한 관광산업이니 여파는 더 크겠지요. 소규모 회사이고 고도의 운영체계를 갖추지 못한 ARIA Company 같은 경우는 아마 금방 망할 겁니다 -_-;; 대기업 재벌 2세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아이카는 회사의 유지를 위해 경쟁과 암투를 일삼아야겠지요. 아리스는…… 뭐 독점 기술을 지닌 능력 있는 숙련 노동자이니 급여의 감소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큰 타격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하지만 주위의 참담한 환경을 보면 아마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기보다 축재에 조금 더 신경 쓸 것 같기는 합니다. 적어도 지금 그들의 스승 프리마들처럼 아름다운 생활을 보내지는 못하겠지요.


4) 급마무리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삐뚤어지게 쳐다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짓임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행복하게 결합하는 결혼식장에서 '자네들은 쓸데없는 허례허식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있네!' 라던지 '결혼은 남녀 상호가 서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격이죠. 저런 소리를 하면 실컷 두드려 맞고 식장에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처럼, 감동을 추구하는 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에 설정을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좋게 생각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딧불의 묘'라는 작품의 감동적인 부분을 부각하기 위하여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 일본을 미화시키는 설정이 어느 정도 비판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ARIA The ORIGINATION의 설정 역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지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절주절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이고요. 어쩌면 조용한 수면을 보면 돌을 던져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과 같이, 잔잔하게 전개되는 작품이기에 더욱 이러한 태클을 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s. 반딧불의 묘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

  '반딧불의 묘'라는 애니메이션을 언급하였기에 조금 더 첨언하자면, 해당 작품 내에서 묘사된 일본의 입장이 완전한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 중에는 분명 일본 국민도 포함되기 때문이죠. 자신들의 피해사실을 그린 이야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위에 제가 쓴 글과 마찬가지로 조금 우습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중상으로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자신이 감기에 걸려 아파 죽겠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주위 국가들의 큰 고통(그것도 자신들의 주권체인 정부에 의해 생겨난)을 무시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자신들의 고통을 지나치게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비난을 들어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위와 같은 관점도 ‘일본인’이라는 개념을 하나로 묶어 파악할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요. 탈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민족주의란 뺄 수 없는 요소이고, 그것을 배경으로 삼고 또 그 안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위의 작품을 탈민족주의적 가치관으로 바라보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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