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안녕 절망선생 (さよなら絶望先生)

  얼마 전 ef - a tale of memories라는 애니메이션을 볼 때, 그 작품의 특이한 화면 구성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제작사인 샤프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었지요. 그런데 어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안녕 절망선생'이라는 작품 소개를 보고,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도 샤프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분량도 12화로 짧은 편이라 별 부담 없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해당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죠. 아, 참고로 제가 ef 때문에 이 작품을 보게 된 격이라 제 글만 보고 '안녕 절망선생'이 나중에 나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안녕 절망선생 쪽이 ef - a tale of memories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_-a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さよなら絶望先生


1. 애니메이션의 특징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간단하게 언어유희와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패러디로 압축하여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본 문화와 시사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약간 애니메이션의 재미에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관련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관계로 각 화마다 자막을 제작하신 Silphis Wind님께서 달아주신 주석을 보고 '아 그렇구나'라고 넘어간 부분이 많았습니다. 패러디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니메이션, 소설, 영화 등의 패러디가 작중 곳곳에 나타납니다. 모르고 보면 별 의미 없는 부분이지만, 패러디임을 알고 보면 그 부분이 또 재미를 가져다주죠. 또 일본식의 언어유희도 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큽니다. 주인공인 이토시키 노조무(糸色 命)의 성을 붙여 쓰면 절망(絶望)이 되는 등, 작중 인물들의 이름은 해당 캐릭터의 특징을 표현하는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두 군데를 집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애니메이션 곳곳에 말장난이 숨어있습니다.

  원래 블랙 코미디 자체가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이죠. 게다가 작품 내 왜색이 짙고,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더욱 극과 극을 달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처음에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분들의 간단한 감상평을 읽고 그냥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위의 이유로 인해 접근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 애니메이션은 꽤 재미있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일본 사회를 비꼬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현대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개인적·사회적 병폐에 대한 지적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또 지나친 블랙 코미디로만 나가는 작품이 아니라 캐릭터와 그 사이의 관계에 따른 재미를 주는 요소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2. 영상

  처음에 이 애니메이션을 본 동기로 샤프트라는 제작사 이름을 들었었습니다. 아직 '역시 샤프트!'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애니메이션 역시 내용과 화면의 조화가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익숙해져 있던 평범한 애니메이션 연출 방법으로 이런 내용을 표현했다면 뭔가 크게 어색했겠죠. 다소 정신없고 성의 없게 보이는 화면 구성과 의미 없이 등장하는 화면들은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줄거리 전개와 잘 어울립니다. 뭐랄까, '멋지다 마사루(セクシーコマンドー外伝 すごいよ!!マサルさん)'나 '마스다 코우스케 개그만화 일화(増田こうすけ劇場ギャグマンガ日和)'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두 작품과는 다른 소재가 주가 되어 있고, 캐릭터의 개성과 연속성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단편적인 이야기 전개 방법이나 분위기는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말하고 보니 멋지다 마사루를 요즘 더욱 발달한 연출력으로 다시 구성해서 만들어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녕 절망선생 쪽이 연출면에서는 훨씬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으니까요.

  으음 중간에 마사루 이야기로 잠시 새기는 했지만, 안녕 절망선생의 화면 구성은 해당 작품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잘 살려주면서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준 적절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의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안녕 절망선생 쪽은 훨씬 그림이 예쁩니다. 단순하면서도 동글동글한 개성 있는 그림체는 정말 마음에 드네요. 캐릭터별 모습이 개성 있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이런 그림체 너무 좋아합니다.


3. 마음에 들지 않는 점

  시사문제의 풍자는 해당 사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설명을 돕기 위해 그 예로 요즘 있었던 일인 '경찰이 촛불시위대의 청와대 방면 행진을 막기 위해 컨테이너로 길을 막았다'라고 하는 사실을 적용하여 보겠습니다. 해당 사실은 말 그대로 일어난 현상만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풍자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또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이 취한 행동은 옳다'라는, 해당 사실을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관점 역시 풍자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긍정적인 사실을 굳이 조롱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따라서 이 현실이 풍자되기 위해서는 '경찰의 대응은 과잉 대응이다'라는 비판적인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비판적인 현실인식에서부터 '명박산성'과 같은 풍자가 시작되는 것이죠.

  이 작품의 주요 내용 역시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는 각종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풍자하는 방식으로 블랙 코미디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위의 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벼운 언어유희, 캐릭터 개성에서 나오는 유머 등은 가끔 제외되겠지요) 따라서 이 유머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작품이 어떠한 관점에서 일본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거슬러 올라간 끝에는 우리가 흔히 일본 극우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관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는 일부 이익집단들과는 달리, 골수 민족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추구라는 것은 '강한 일본'입니다. 그리고 이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 국민들이 '일본인'과 '일본국'이라는 헤게모니에 의해 결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본사'가 필요하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럼이 없는 '일본 문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분야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는 지도자적 위치의 일본을 원하는 것이겠죠. 위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역시 민족적 자부심과 대단결을 위한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대 보유(라지만 지금도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동북아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이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문제는 이들이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항상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는 '열등한 타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강하다'라는 말 자체가 이미 타자를 가지지 않고서야 성립될 수 없는 말이잖아요. 따라서 이들은 좁게는 '재일 외국인', '부라쿠민(일본 개항 이전의 천민)', '아이누족(일본 원주민 중 하나)'등을 강한 일본을 위해 배재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합니다. 이와 같은 열등한 타자는 '장애인',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자발적 백수)족', '경제적 약자'등으로도 확대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강한 일본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장애물'이 되지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일본에 필요가 없다'라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 도지사의 말이 이해될 수 있지요. 그리고 이 열등한 타자의 관점은 일본 밖으로 확대되면 한국, 중국, 대만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로까지 확대됩니다. 오죽하면  근대화 중 '우리는 더 이상 아시아인이 아니다'라는 아시아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을 담은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이 나와 이게 일본 사회의 주류 이론이 되었겠습니까(참고로 이 이론을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 최고액권인 1만엔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생각보다 극우파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군요 -_-;; 여하튼 안녕 절망선생 내에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이와 같은 일본 극우파의 현실인식이 그 기초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극우파적 관점을 지닌 비관론자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인 만화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는 애니메이션 내에서 얼마든지 감독의 재량으로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을 자제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관점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은 작품 중의 말을 빌리자면 '원작대로'라는 이름의 핑계로도 도망가지 못할, 제작사의 의도가 다분히 나타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와 같은 극우적 관점은 후반부에 갈수록 점점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저도 후반부로 갈수록 그다지 즐거운 마음으로만 애니메이션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초반부의 비판은 개인적인 성향과 현대사회 공통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반해, 뒤로 갈수록 일본의 정치 비판이 강하게 드러나고 최종화에서는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제기가 되어있거든요. 어쩌면 노리고 이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번 아리아 디 오리지네이션(ARIA The Origination)에서 여담으로 반딧불의 묘를 평한 것과 마찬가지로, 탈민족주의 관점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분명 아닙니다.


4. 총평

  재미있게 구성된 블랙 코미디입니다. 자신을 욕하는 작품을 보고도 그 센스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분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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