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실험 이야기
예전에 전공수업이었던 전략경영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아, 미리 학점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C…… 다시 들을 자신도 없는데 큰일이네요 흑흑. 뭐 이런 과목이 한두 개가 아니니 상관없으려나요 -_-;;).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네 조로 나누어 편성한 뒤, 각 조는 회의를 통해 붉은색 또는 노란색의 카드 중 하나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붉은색 카드는 해당 조를 제외한 모든 조가 +25점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노란색의 카드가 나올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 카드를 제출한 해당 조는 +50점을 받게 되어 있지만, 각 조는 그 회에 제출된 모든 노란색 카드의 숫자에 -25점을 곱한 점수를 페널티로 얻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거의 일 년 전의 일이라 이 수치가 정확한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하지만 이와 같은 형식의 실험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약간 복잡해 보이는군요 ㅋ 일단 한 특정 조를 중심으로 주위 환경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간단하게 표로 살펴보겠습니다.
특정 조는 어떠한 경우라도 노란색 카드 제출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인 조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노란색의 카드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는 특정 조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았을 때의 점수입니다. 이 상황을 모든 조에 확대시켜서, 각 선택지에 따른 모든 조의 총득점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보시다시피 모든 조가 빨간색 카드를 제출한 경우가 총 획득 점수가 가장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모두가 노란색 카드를 제출했을 경우 이익을 보기는커녕 모두가 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죠. 실제로 모든 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란색 카드를 제출했을 경우, -25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사실 이는 게임이론에서 흔히 보이는 몇 가지 실험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빨간색 카드를 '협조'로, 노란색 카드를 '배신'으로 읽어도 무방하죠. 게임이론에서 흔히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실험의 변형입니다. 여기서 모두를 위한 최적의 선택은 '모두가 빨간 카드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만약 각 조 상호 간의 협조가 가능하다면 이를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최적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 실험에서 각 죄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가정되었듯이, 이 실험에서도 각 조는 조 내부에서만 토론이 가능하지 다른 조와의 의견 교환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의견 교환을 하지 못해서 상대방의 선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느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노란색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죠.
만약 상호 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합니다. 모두가 협조 약속을 한 상황이라도, 그 약속이 구속력이 없다면 배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협조 약속을 한 뒤에도, 여전히 자신은 배신을 하는 쪽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지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일회성 실험의 경우는 이와 같은 배신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이 실험은 4회 반복된 시험이었기 때문에 '평판'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 변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합리적 인간'이라면 평판과 실험의 결과 사이에 영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배신을 한다고 다른 조가 비난을 해도 이익을 본 사실과 카드 제출 권리는 변하지 않잖아요) 배신을 선택하는 것이 옳겠지요. 물론 이 실험은 애초에 의견 교환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조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니 배신행위도 불가능하겠죠.
이 실험은 죄수의 딜레마 실험과 마찬가지로 고전 경제학의 '이기적 인간의 사익 추구 행위가 사회적 효율성을 가져다준다'는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전략경영 수업에서 저 실험을 한 이유는 기업 간 동맹 행위에서 배신을 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을 위해서였습니다(이에 대해 더 이상 자세히 기술하기에는 교수님께 죄송해서 안 되겠네요. 수업도 열심히 듣지 않았는데… ㅠㅠ 죄송합니다 교수님 흑흑).
저 실험 개요를 들었을 때부터 과연 무엇을 위한 실험이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이었는지는 너무 뻔했습니다. 저런 상황이라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의 협조가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알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아마 자신에게 있어 최선의 결과는 모두가 협조할 때 자신만이 사익을 추구하는 상황일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저 실험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경우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조건과 통제 변인이 저런 결과가 나오게끔 짜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변인 아래서도 저 근본적인 이익 추구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변인을 바꾸어 배신을 할 경우는 무지막지한 불이익만을 주고, 협조를 할 경우의 이익을 엄청나게 늘려준다면 다들 협조 행위를 하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의 협조 역시 이타적인 이유에서의 협조가 아니라, 효율적인 사익 추구를 위한 협조 행위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부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태까지 많은 철학과 종교에서 '이타적이고 선한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관으로 부여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이기적이고 선한 인간'을 부정하지는 않았었죠. '이기적이고 선한 인간'이 부정한 것이라는 극단적인 이론은 많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저 인간상이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네요 ㅋ 사실 저부터도 그렇게 착하지 못한데, 저러한 인간상을 바라는 것도 모순된 모습이기는 합니다. 이게 인간이 신을 동경하게 되는 이유라는 생각도 드네요.
p.s. 아, 참고로 저 실험에서는 4회 반복 모두 제가 속해있던 조는 빨강, 나머지 세 조는 모두 노랑을 제출하는 결과나 나타났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총 -300이라는 무지막지한 점수를 얻었습니다. 다른 조는 각각 0점을 얻어갔고요. 물론 저희 조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모인 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간단한 실험이었으니 저렇게 했지, 만약 '여기서 획득한 점수를 학점에 반영하겠다' 등의 조건이 붙었다면(즉 실제로 손익에 영향이 있었다면) 아마 4회 연속 빨강과 같은 선택은 하지 못했겠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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