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한 생각

 


  TV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세간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는 매체로 주로 인터넷을 애용합니다. 인터넷 기사를 제공해 주는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서 기사를 읽을 때도 있지만, 그냥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에서부터 카테고리에 따른 링크를 이용하여 글을 읽을 때가 많죠.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 그게 편하잖아요 -_-a

  그렇게 기사를 읽은 후, 가끔씩은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댓글에 대한 생각"글에서 말했던 적도 있지만, 저는 포털사이트의 댓글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기사에 달린 댓글은 모 포털에 비해 좀 더 생산적인 의견 개진을 하시는 분이 많으셔서 저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알아보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댓글을 쭉 보다 보면 꼭 보이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처럼 시작하다가, 결국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고대사의 존재를 말씀하시며 해당 사항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다음의 한 카페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거의 모든 기사에 도배에 가까울 정도로 글이 올라와서, 다음에서 해당 카페의 이름을 금칙어로 만든 것 같더군요(카페 이름을 소개하실 때 이름 사이에 각종 특수 부호를 집어넣으시는 걸 보면……). 그래서 오늘은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고대사에 대한 저의 간단한 생각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여기서 전제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저는 역사를 전공하거나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스스로 찾아 읽은 글에서 제 의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이에 대한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역사학이 증명하여야 할 영역까지 이야기를 끌고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


1.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국사가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은, 필연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역사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왜곡되지 않은 본래의 역사를 수록하고 있는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것이 저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입니다. 저 책들은 그동안 오래된 정통 역사서라고 여겨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보다 훨씬 자세한 고대사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고대사의 기록이 매우 화려합니다. 우리 민족이 고대에 활동하던 영역이 중국 북부와 만주, 한반도 북부가 전부라는 기존의 고대사 영역에서 벗어나, 중국 전토, 시베리아, 몽골은 물론이거니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활동도 아니라 '통치'를 했다는 주장이 제시됩니다. 여기서 더 주장되는 내용 중에는, 우리 민족의 문명이 영향을 준 문명 중에는 수메르 문명도 있고, 이 영향 덕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현되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 두 서적에 대한 진위논란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한 바로는 이 두 서적은 위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는 부분이니 그냥 이 글에서는 '진서인지 위서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정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서적들의 진위여부가 확실치 않다고 하면, 정식 사료로 채택하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료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마주치게 됩니다. 여기서 저 사료를 '진서일 수도 있고 위서일 수도 있으니 가능성만 열어두자'라는 어중간한 의견은 결국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정의 자체를 불분명하게 하므로 채택하기는 조금 힘이 든다고 생각합니다.(주류 국사와의 차이가 워낙 많이 나야죠;;) 결국 자료가 거의 없어 연구가 힘든 고대사 연구에서,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자취를 따라가 봐야 하는가 마는가의 문제가 되겠군요.


2. 역사연구에 대한 태도

  역사 연구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탈가치적인 방법(객관적인 방법)과 특정 가치관에 입각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이 오랫동안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와 같은 연구관은 그 기세가 많이 꺾였죠. 어떠한 사태를 쳐다보고 해석하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특정 가치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단순한 사료 수집 부분을 넘어서 그것을 정리·분류·인용하는 것에서부터 사실상 연구자의 가치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럼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습니다.

  일반적으로 현재 인정을 받고 있는 국사 관련 글들을 보면, 민족주의적인 시각과 한국 자체 근대화 가능성에 중점을 둔, 독자적인 문명으로서의 한국 문명을 긍정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만간 식민지 근대화론과 아시아 동포주의(라고 쓰고 대동아공영권이라고 읽죠)에 입각한 뉴라이트의 사관도 있습니다만, 그 또라이들은 논의할 값어치도 없는 매국노들이니 그냥 제외해 버리겠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유물론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사관을 공식 사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사 논란의 중심이 되는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에 입각하신 분들의 사관을 보면, 극단적인 민족주의 경향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까 언급한 사관들 중 뉴라이트와 같이 대놓고 영혼을 팔아먹은 인간들을 제외하고, 딱히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마음은 없습니다. 일단 제가 감히 어디가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준도 되지 못하고,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으니까요(물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지적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제에 대한 의심과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 건 종교지 학문은 아니죠 -_-).

  하지만 특정 사관을 편들 수 없다고 해서, 그 사관 하에 입각한 사람들의 연구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의 새로운 고대사를 쓰는 분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네요. 진·위서임을 알지도 못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사료도 부족하면서 무조건 그 둘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주장하고, 그 서책에 끌어 맞추기 식으로 여러 가지 사료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며 끌어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합니다. 아예 대놓고 왜곡하는 것은 기본이더군요) 가설을 설정해 두고 가설을 뒷받침해 줄 만한 실험 결과만을 취사선택하여 케이스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학 연구에서 절대로 피해야 할 금기 중의 하나입니다. 고대사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학문의 방법론도 망각하고 있으니, 그 점이 매우 답답한 노릇입니다.


3. 일본서기에 대한 이야기

  이 같은 주장의 문제점을 훌륭하게 짚어줄 수 있는 경우가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서기라는 역사책입니다. 이 책은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와는 다르게, 진서임이 매우 확실한 책입니다. 역사책의 편찬 시기와 편찬자가 매우 확실하고, 일본서기를 뒷받침해 줄 여러 증거도 현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위서로서의 혐의도 벗지 못한 환단고기·규원사화에 비유하면 이 일본서기는 그야말로 확실한 정통 정사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본서기라는 책은 일본을 벗어나기만 하면 거의 판타지 소설 취급을 받습니다. 왜일까요? 분명 확실한 정사인데요. 그 이유는 편찬 당시부터 책 전체에 걸쳐 왜곡과 조작이 이루어진, 말 그대로 당시 왜인들이 꿈꾸던 역사를 그린 대하소설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설치된 임나일본부가 신라와 가야를 지배하였다는 말이야 뭐 유명한 사항이죠. 그 외에도 있지도 않은 왜왕 이름 추가, 허황된 신화로부터 왜왕가의 정통성 획득, 고대 왜국의 정치체제 수준의 왜곡 등 여러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더 있기는 한데 일본사기 이야기가 주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이렇게 열심히 비판하면서 그것보다 더욱 근거가 박약한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는 어떻게 정통 역사서로 간단히 인정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저기 위 일본사기의 왜곡 내용을 살짝 바꾸면 '임나일본부와 고대 야마토 정권 -> 12연방을 거느리던 대 환국, 있지도 않은 왜왕 이름 -> 있지도 않은 단군 이름, 허황된 신화 -> 허황된 전설, 고대 왜국의 정체 왜곡 -> 고대 한국의 정체 왜곡'이 되네요. 간단히 말해서, 정확한 증거도 없이 주장하는 내용은 일본서기 뺨 칠 정도로 허황되다는 말입니다. 기존에 연구되어 오고 쓰여왔던 역사를 이렇게 크게 부정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증거가 있음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달랑 책 몇 권만 믿고 이 내용 그대로 우리의 역사를 옮겨 적자는 건, 스스로 한국사의 정통성을 책 달랑 두 권에 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는 말입니다. 아,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도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있으니 실질적으로 한 권에 맡기게 되겠군요.


4. 아쉬움

  이와 같이 과학 연구의 기본적 방법론도 잘 지키지 않으면서 무조건 고대 환국의 존재를 설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거의 종교에 준하는 믿음이라고까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새로운 고대사에 종교적인 믿음 수준의 지지를 보낼까를 생각해 보면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우선 새로운 고대사가 기존의 고대사를 대체할 경우 가져다줄 수 있는 두 가지 인식의 변화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는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의 강력한 고대국가를 이루고 있는 문명의 원 뿌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자부심, 또 다른 하나는 고대에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강대한 민족의 후예라는 극단적 민족주의의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보고 있자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저 관점들은 극단적인 자민족 중심주의에 입각한 극우사관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물질적으로 얼마나 풍요롭고, 다른 민족과 얼마나 큰 격차가 나는지에서부터 우리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으로,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본주의적인 가치가 건국신화에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나, 조선시대 이전까지 타민족에 대해 열린 자세로 세계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조상들은 저 관점에서는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땅을 가졌고,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얼마나 원조이고 얼마나 강대했는가가 그들의 평가 척도입니다. 이는 마치 현재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격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연봉·집 평수·차 크기 등의 물질적인 척도만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황금만능주의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또 이는 대제국의 영토만 보고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 안에서 희생된 수십만의 사람들과 문화유산은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극우파 파시스트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고대사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을 보며, 여전히 한국에는 강력한 천민자본주의적 시각과 파시즘이 그 맹위를 떨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는 일본인들이 아시아의 역사에서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늦은 출발을 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자 온갖 거짓 사료를 들고 나오는 모습과도 겹쳐 보입니다. 사실 일본 열도가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 비해 인류 발상지로부터 멀고, 유라시아의 구석임을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문명의 발달이 늦은 것은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며 '우리가 무조건 짱이셈'하는 그 태도는 사실상 그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고대사를 필사적으로 왜곡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의 극우파들이 이러한 역사왜곡을 더욱 선호하는 것을 점에서 비추어볼 때, 한국의 환단고기·규원사화 옹호론자들은 실제로 일본의 극우파를 닮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들처럼 당당한 왜곡을 통하여 '위대한 대한민국 만들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괜히 너무 멀리 나간 추측일까요.

  또 이는 다른 옆 나라인 중국인들의 천민자본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역사인식 방법과도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중국은 기존 민족, 문화권 별로 서술되는 것이 일반적이던 역사에 '지금 우리 땅이면 전부 다 우리 역사에염'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나라입니다. 지금 티베트 사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문화도 인종도 다른 티베트를 서북공정을 통해 순식간에 중국으로 만들어 버리잖아요. 현실상의 힘을 이용해 반대하는 세력들을 억압하며 춘추필법으로 유래된듯한 '내 멋대로 역사관'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중국인들의 역사관에는 질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의 새로운 역사관을 선호하는 분들이 중국 정도의 힘이 있었으면 바로 저런 태도를 취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도배에 가까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이 생각은 더욱 강해집니다. 물론 이것이 저의 단견과 편견에서 나온 오류이기를 바라기는 합니다.

  게다가 저 역사가 사실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부터 지속적으로 퇴보의 역사를 걸어온 민족이 되어버립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위대한 민족에서, 한반도 구석에 자리 잡아 경우 명맥을 잇고 있는 한심한 민족으로 전락해 버리는군요. 게다가 고대 환국의 영역에서 그 문화적인 영향이나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아서는, 우리의 조상들은 그 땅의 다른 민족들에게 우민화 정책과 공포정치를 펼쳐 엄청난 원망을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 하겠네요. 사실 이 뒤에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한참 더 있기는 하지만, 글도 너무 길어졌고 지나치게 주제 범위가 넓어질 듯하니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문구를 인용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마무리 문구가 있어 오늘은 그것으로 글의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뉴라이트에서 새로운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며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을 퍼부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글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의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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