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트루 티어즈 (True Tears)


  트루 티어즈라는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뭔가 좀 촌스러울 것 같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멋들어진 제목을 붙이는 여러 작품이 나오는데, 이런 시대에 '진실한 눈물'이라는 상투적인 단어의 제목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죠 ^^; 하지만 작품을 죽 보면서 그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보이는 연애 행태(?)와는 다른 줄거리 진행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true tears


1. 특이한 인물 간의 관계구성

  처음 애니메이션 오프닝 화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3명의 여주인공'입니다. 유아사 히로미(湯浅比呂美), 이스루기 노에(石動乃絵), 안도우 아이코(安藤愛子)의 세 히로인을 아예 제목 타이틀에부터 앉혀놓죠. (참고로 그 직전 화면에서 주인공 나카가미 신이치로(仲上眞一郎)와 노부세 미요키치(野伏三代吉)가 어벙한 표정으로 여주인공들을 쳐다보는 화면이 너무 웃기게 생각되네요.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암시처럼 보여서요 -_-a) 그래서 처음에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차가웠던 유아사 히로미와, 주인공에게 특이하게 다가오는 이스루기 노에의 모습을 보며 '아 처음에 이래서 노에와 가까워지다 아이코가 경쟁에 참여하고, 둘 간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는 결국 히로미의 뒤늦은 주인공 쟁탈전 참가로 패배, 이야기는 히로미의 승리로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어찌 보면 그동안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던 정석(?) 코스잖아요.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아이코는 애초에 왜 세 명의 히로인 위치에 두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사실 좀 불리한 위치이기는 했습니다. 제작진들이 아이코의 가장 큰 경쟁력인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던 누나'라는 설정을 거의 부각해주지 않는 부분에서부터 '아 이분은 틀렸구나'라는 짐작을 했었죠. 요즘은 그런 경향이 줄어들었지만, 한 때 '소꿉친구'가 그 어떤 경쟁자로 물리칠 무적의 설정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고, 지금도 아직 그 위력을 잃지 않은 시대에 저 장점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주요 여주인공에서 탈락이라는 말이죠.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라는 엄청난 결점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쩝, 왜 여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시켰는지도 약간 의아스럽더라고요.

  아이코가 이야기 중반 주인공에게 잠깐 무리한 접근을 해 온 이후, 생각보다 노에와의 진도가 빠르게 진행되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일차적 갈등을 일으켜 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아이코는 신이치로와 한 번 기습 키스를 이후 어떠한 경쟁에도 참여하지 않은 후 자동 탈락 -_- 되어버리고, 닭장 옆에 '노에가 좋아'라고 돌멩이로 낯 뜨거운 대사를 잘도 나열하는 주인공을 보며 '앞으로 6화나 남았는데 이거 좀 애매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다행히 곧바로 신이치로 쟁탈전에 히로미가 끼어들기는 했습니다만, 히로미의 참가 역시 조금 색다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 아침드라마?

  트루 티어즈를 보다 보면 설정에서 무언가 많이 친숙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소재가 사용되거든요 -_-;;; 먼저, 신이치로의 어머니가 히로미에게 차갑게 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작품 초반 설정에서 히로미의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고, 히로미의 부친과 친분이 있던 신이치로의 아버지가 히로미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중반 그 진정한 이유가 나오는데, 저는 그걸 보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히로미와 신이치로가 사실 배다른 남매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불륜, 배다른 남매, 그리고 사랑… 뭔가 이거 많이 익숙한 소재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대로 진행된다면 이제 재벌만 나오면 되겠네'라는 생각까지 들었었습니다 ㅋ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꽤 낯익은(?) 소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결국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끝납니다. 일본 역시 친남매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이 설정이 사실일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물론 '둘이 진짜 친남매이고, 그래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라는 길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진짜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 진행-_- 이기도 하고,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런 전개가 될 정도로 저 둘의 사이가 진행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 소재는 신이치로와 히로미 두 주인공이 초반에 가까워지지 못하게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이 장벽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 + '같이 살잖아'라는 두 가지 절대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히로미와 신이치로의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며 다른 여주인공들이 파고 들 여지가 생겼으니 말이죠. 마치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보호무역을 통해 외국의 대기업과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재벌기업을 키워놓았듯이, 심리적 장벽인 '배다른 남매' 오해의 제거 전까지 노에는 신이치로의 마음에서 히로미와 충분히 경쟁할 만한 자리를 잡아놓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뭐, 그 잡아놓은 '자리'역시 원래 '여자친구'의 자리는 아닌 듯합니다만, 이 이야기도 잠시 뒤로 미루어야겠네요.


3. 천둥이와 땅바닥의 이야기

  위의 이야기에서 뒤로 미룬 이야기들을 이제 시작해 볼 때로군요. 히로미의 신이치로 쟁탈전 참가와 노에와 신이치로의 관계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미룬 이유는,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신이치로가 그리고 있던 동화인 '천둥이와 땅바닥의 이야기'와 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중 동화작가를 꿈꾸던 신이치로가 쓰는 이 동화는 작품의 진행상황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죠.

  동화 줄거리의 진행은 곧 노에와 히로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신이치로의 심리상태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최초의 동화에서, 닭인 천둥이는 하늘을 날고자 하지만 매번 그 시도를 미루기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땅바닥에게 닭으로서 하늘을 나는 첫 번째 시도를 빼앗기게 되지요. 물론 땅바닥은 하늘을 나는 데 실패하지만, 최초의 영광은 땅바닥에게 빼앗깁니다. 여기서의 천둥이는 신이치로입니다. 자신이 본래 바라는 것도 모르고 단지 '날고싶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채로,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천둥이의 이야기를 쓰며 신이치로는 그것에 자신을 투영시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동화의 줄거리가 추가됩니다. 천둥이는 자신이 날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날아오르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는 그 어떠한 외부의 요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바람대로 행동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이치로가 그동안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기를 피하며 주어진 대로 받아온 상황에 이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대변하여 줍니다. 그리고 노에와의 관계를 청산 -_-하고 히로미와의 교제를 선택하죠.

  이렇게 단순히 말하면 '아 누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노에가 좋아'에서  '나는 사실 노에가 아니라 히로미를 좋아했어'라는 심경의 변화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정답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이 좋아했었던 인물이 히로미라는 사실은 맞습니다만, 노에 역시 좋아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단 노에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자친구'로서가 아니라, '멘토'로서였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노에가 일방적으로 신이치로의 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아닙니다. 노에 역시 자신의 눈물을 찾는다는 시적인 명분 아래 성장을 모색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에의 변화와 성장은 신이치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신이치로 역시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히로미를 좋아한다는 결단을 내린 후에도 자신의 춤과 동화를 노에에게 바친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노에와 히로미 이 둘이 단지 신이치로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캐릭터였다면 신이치로는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겠죠. 하지만 노에가 여자친구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10화 히로미의 이사 장면에서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 신이치로가 그 뒤의 무기하 춤과 동화책을 노에를 위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친구에게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 준 멘토에게 바치는 성장의 증표로서 말이지요.


4. 마무리

  트루 티어즈를 간단히 정의해 보자면, 성장소설과 연애소설의 절묘한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연애가 그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성장'의 개념을 뺄 경우 절대로 노에와 히로미에 대한 신이치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부가적인 줄거리로 아이코와 미요키치의 이야기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원래 큰 줄거리와 상관없는 부가적인 줄거리를 좋게 보는 성격은 아닙니다만, 이 둘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트루 티어즈를 13화까지 만들 분량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_-;; 생각한 대로 말하자면, 이 둘의 이야기는 중심 줄거리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아이코와 신이치로의 관계를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에게 영향을 줄 관계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여자친구를 두 눈 뜨고 뺏길 뻔할 때까지 몰렸던 미요키치가 그 상황에서도 너무 얌전한 반항만을 할 정도였으니, 기타 상황에서는 거의 작품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네, 결과적으로 작품 감상이 끝난 지금까지 아이코가 굳이 여주인공의 자리에 앉아있던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_-;;;;;; 

  여담이지만, 작중 인물 중 이스루기 노에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절묘하게 백치미와 순수미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재미있는 캐릭터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거든요. 히로미는 뭐랄까… 꽤 자주 보이는 캐릭터라서 참신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이 이와 비슷한 캐릭터가 많았죠. 그래서 사실상 주인공이 히로미와 맺어지는 것이 결정이 된 10화 이후에도, 혹시 제작진이 변덕을 부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최근 본 연애물에서 특정 캐릭터와 캐릭터가 맺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이 작품이 유일했습니다. 그만큼 몰입도가 꽤 높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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