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체인지 (Change)
얼마 전 여담님께서 체인지라는 일본 드라마를 하나 추천해 주셨습니다. 평소에 드라마 자체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은 그 소재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보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죠. 막상 드라마를 볼 땐 몰랐는데, 다 보고 난 뒤에야 올해 7월에 방영이 끝난 최신 작품이라는 것과 주인공 역할을 연기했던 사람이 기무라 타쿠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태 봤던 일드라고는 춤추는 대수사선과 노다메 칸타빌레 뿐이라 일본 연예인은 많이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인지라는 작품 내에서 이상하게 전에 봤던 두 작품에 출연했던 분들이 자주 등장해서 아주 낯선 느낌은 받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요.
그럼 간단한 잡담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고, 이제 본격적-_-인 잡담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CHANGE
1. 줄거리
주인공인 아사쿠라 케이타(朝倉啓太)는 시골 학교에서 교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친인 아사쿠라 의원과 주인공인 큰형이 헬기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해당 선거구에서는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됩니다. 여당인 정우당에서는 의석 수를 잃지 않고 싶었기 때문에 그 지역구 의원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들인 아사쿠라 케이타를 출마시키고자 하고, 이를 전하러 칸바야시 의원의 여비서인 미야마가 케이타에게 찾아갑니다(註1). 처음에 출마를 거부하던 아사쿠라 케이타는 미야마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출마를 결심하게 되고, 선거에서 승리하여 국회의원이 됩니다.
케이타가 그렇게 갑작스레 국회의원이 되고, 젊고 잘생긴 외모로 '국회왕자'란 별명을 들어가며 의원직에 적응해 나아가고 있을 때쯤, 일본 수상은 성추행 스캔들로 사임 의사를 밝히게 됩니다. 그리고 차기 당 총재이자 수상(내각총리대신, 총리)을 결정하기 위해 여당인 정우당의 유력자들이 모여 고민을 하는데, 총재의 자리에 앉힐 인물이 없어 고민을 하게 됩니다. 3개월 후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데, 정우당의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선거에서의 패배가 기정사실화 되어 있고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가 총리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자리에 앉기를 원하지 않던 것이죠. 그때, 칸바야시 의원이 아사쿠라를 총리로 만들자는 제안을 합니다. 아무도 앉기 싫어하는 자리이므로 정치 초보인 그를 앉혀 희생시킬 수도 있고, 케이타의 젊은 이미지로 인해 당의 이미지 쇄신도 가능하다는 것 때문이죠(註2).
길게 쓰다 보니 재미도 없고 힘만 드네요 -_-;; 위에 쓴 것은 아까우니 그냥 두고, 이제부터 광속으로 요약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총리가 된 아사쿠라 케이타는 주위에서 다가오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애초에 예상되었던 허수아비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일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총리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죠. 하지만 곧 칸바야시 의원의 정치적 공격이 시작됩니다. 칸바야시 의원은 차기 총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타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케이타와 동료들은 그에 맞서 저항해보지만, 결국 칸바야시 의원의 음모에 당해내지 못하고 케이타는 총리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가 사임 발표 직전 과로로 쓰러진 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시 초심을 찾은 뒤, 결국 사임과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것임을 발표합니다(註3).
註1 : 일본은 선거구가 세습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지역구민들도 자리를 세습받아 출마하는 기존 국회의원의 자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고요.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도 굳이 정치에 관심 없는 케이타를 억지로 출마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건 뭐 지방 영주(大名)도 아니고……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남의 나라 정치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역시 웃긴 건 웃긴 겁니다 ㅋ
註2 : 일본은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의원내각제 국가이므로 국가수반인 내각총리대신(수상)을 국회에서 선출합니다. 그러므로 여당의 총재(당 대표)가 당연히 총리가 되는 구조입니다. 총재가 되려면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특정 계파를 이끄는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계파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데(한나라당 내 이명박계, 박근혜계 등과 같이……) 일본의 계파는 우리나라보다 결속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그 계파 수장들의 힘이 그만큼 강력합니다.
註3 : 일본 수상은 일본 중의원(하원)의 해산과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헌법상의 고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멀쩡한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실시하는 이유는, 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이 야당의 견제를 받아 추진이 불가능할 때 국민들에게 원 구성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표시하기를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원론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여당이 승리할 것 같으면 중의원 해산하고 총선거를 하는 것이고, 여당이 불리하면 어떻게든 임기 내내 버티면서 정국의 반전을 꾀하는 쪽이 맞는 이야기이겠지만요. 2003년 고이즈미 총리 때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우정국 개혁안 통과 과정 중 반대하는 여당 내 세력을 쳐내는 동시에 야당의 세력을 위축시키는 방법으로 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후쿠다 총리는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밑돌고 있기 때문에 이 지지율을 반등시킬 뚜렷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죠. 도리어 야당 쪽에서 후쿠다 총리에게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것만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 드라마의 재미
음모와 암투가 난무하는 세상에 순수하고 정의로운 마음의 주인공이 등장, 도전하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내용은 아주 많이 진부하고 상투적이지만, 그만큼 무난하게 통하는 소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 이런 비현실적인 내용이 은근한 현실성을 두르고 나타나면 그만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사쿠라 케이타가 바로 그런 캐릭터입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주야없이 분골쇄신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이 세상에서 최악의 지도자는 무능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이는 케이타라는 캐릭터는 정치 분야에서만 초보일 뿐이지 무능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이런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청자의 감정을 더욱 흡입하기 위해선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악역의 역할이 훨씬 중요합니다. 시나리오 상의 치밀한 설정부터 그것을 시나리오 이상으로 살려줄 수 있는 분위기의 악역 말이죠. 그런 면에서 악역으로 나왔던 칸바야시 쇼이치 의원(테라오 아키라(寺尾 聰)씨 연기)은 정말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명을 찾기 위해 체인지에 대해 검색해보면 대부분 '기무타쿠 하앍하앍'이나 '에리짱짱짱짱'과 같은 류의 글이 많던데, 저는 칸바야시라는 인물을 멋지게 연기해 낸 테라오 아키라씨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 표정이 없는 듯하면서도 표현하고 싶은 감정은 전부 표현해 내고, 대충 보면 범부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 언동에서 은근히 나타나는 카리스마까지…… 완전히 반해 버……리면 안 되겠죠. 저도 정체성이 있는데, 흠흠. 어쨌든 다른 주연급 인물들의 연기에 큰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그 우부카타 의원 역을 맡은 분이 짓던 굉장히 어색한 모양의 미소만 제외하면요. 북한 어린이들의 만들어진 미소 같은 그 어색함…… 문화적 차이이려나요 -_-a) 테라오 아키라 씨만큼 작중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드라마의 한계
굉장히 재미있는 본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인 저는 드라마 내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나 이런 쪽은 잘 알지도 못하니 다행히도 배우를 까는(?)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겠군요. 일본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이니 한국인인 제가 볼 때 거북스럽게 느껴지던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그런 논리로 드라마를 비판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대하드라마는 전부 파시즘적인 사상이 담겨 있는 드라마로 평가할 수 있잖아요. 상당수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은 아예 제국주의 홍보물이라고 해도 되고 -_-;; 이렇게 살면 정신력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ㅋ).
우선 아사쿠라 총리로 대변되는 '이상적인 총리'의 모습이 심히 거슬렸습니다. 분명 저런 총리가 있으면 정말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저 총리의 이상이 대다수의 국민이 지향하고, 일반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도덕 원칙에 따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죠. '대다수의 국민이 지향'이나 '일반적인 도덕 원칙'이라는 말에서 충분히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건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_-a 아사쿠라 총리와 같이 이상적이고 열정적인 성실한 정치 지도자가 지난 세기에 있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라고…… 아사쿠라 총리가 정관계와 맞서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분명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는 합니다만, 그는 동시에 다른 정치 참가자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만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전형적인 일인 독재 체제의 구축과 아슬아슬한 경계를 사이에 두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불리할 경우 국민의 뜻에 맡기겠다! 라고 하며 언론을 통해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 정국을 조정하던 것 역시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죠.
그리고 아사쿠라 총리가 보여준 초인적인 업무 수행 모습 역시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죠. 진정한 지도자는 모든 일에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을 기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냐 보단 얼마나 일의 분배를 잘하는가가 정치지도자의 능력이 아닐까요. 정치에는 초보인 총리라는 설정이 있으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저런 총리와 같은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동경한다고 생각해 보았을 때, 이 드라마 역시 사람들의 정치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모든 분야를 관장할 수 있는 특출한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 사회는 아니죠. 아니 이건 조선시대에도 불가능한 지도자의 모습이죠. 가능할리 없는 이러한 환상을 등에 업고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현실의 예로 존경하옵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각하께서 대불공단의 길 가운데 전봇대를 뽑아라, 흑백 용지로 보고서 인쇄를 해라 등의 지시를 내린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으음 이거 또 정치문제만 하면 자꾸 옆길로 새 버리네요 -_-;;; 여하튼 중요한 건, 이 체인지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지도자의 모습은 너무 이상적이고 지극히 전통적인 지도자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는 잘 맞지 않는 지도자상인 데다, 정치인들에게는 부담을 주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실망감을 주기만 하는 환상입니다. 게다가 이게 잘못된 방향으로 악용되면 전제적 독재나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고요. 드라마 하나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태풍이 불어올 거라 생각하는 것과 같이 너무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아사쿠라 케이타라는 인물을 통해 과로로 인해 쓰러져 사망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와, 일본에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 기대되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적인 지도자상에 대한 거부감을 제외하면 이 드라마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악역으로 나온 칸바야시 의원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이 드라마를 추천해 주신 여담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그런데 막상 여담님 블로그에서는 관련 글이 날아가버렸죠…… ┒-). 그나저나 이 글을 어떤 카테고리에 집어넣어야 할지 매우 고민되네요. 분명 여태까지 써 온 글의 방식대로라면 애니메이션 카테고리가 제격인데, 애니메이션은 아니잖아요 ㅠㅠㅋ 일단 애니메이션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카테고리 이름을 다른 것으로 수정해볼까도 생각 중입니다만, 드라마나 영화 감상문이 다시 올라올 빈도는 적을 텐데 이 작품 하나 때문에 카테고리 이름을 바꾸는 것도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수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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