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에 대한 생각


제목 때문에 혹시 오해하실 분이 계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인 '법'은 한자 '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法이라는 한자를 파자할 때 등장하는 설명은 '물(氵)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去) 순리적인 것을 뜻하는 글자'(출처 브리태니커)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설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딱딱하게 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의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순리를 가리키는 것이 법이라는 설명이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느껴지잖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설명은 法의 원래 어원을 왜곡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法의 고자(古字)를 살펴보면 위의 설명과는 거리가 있거든요. 글자가 약간 복잡하니 크기를 키워보도록 하겠습니다.


灋 (氵+ 廌 + 去)


  이 법의 옛글자를 살펴보면, 중심이 되는 글자는 해태를 뜻하는 廌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해태라는 동물은 상상 속의 동물로 선과 악을 간파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덕분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서 악한 사람은 뿔로 받아 응징한다고 합니다.(출처 위키백과) 물론 이 '해태'라는 짐승이 신수(神獸)이기 때문에 이 짐승이 판단하는 것이 곧 하늘의 뜻과 마찬가지이고, 크게 보아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법의 해석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이는 좀 억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法을 물에 비유한 저 풀이는 서양에서 전해져 온 현대적 개념의 법(law)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양의 법(law)은 넓은 의미로 보면 자연법(natural law)과 실정법(positive law)을 모두 포함한다고 하고, 인간의 법은 자연법에서부터 비롯되는 특수한 응용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잖아요. 아무리 보아도 이 쪽이 '물과 같이 순리적인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됩니다.(물론 서양의 법 역시 유일신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존재하므로 다른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만, 크게 보면 간단히 저렇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현대적인 法이라는 글자의 해석은 한자 문화권이 서양의 근대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비슷한 개념을 대입하는 과정(格義)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로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었을 때 중국인들에게 불교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도교와 유학의 개념을 빌려와 불교를 설명했듯이 말이죠.


  그럼 원래 글자 法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어디까지나 추측이기는 합니다만, 고대 중국의 사회를 생각해 보면 아마 단순한 규율(規律)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중국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상층 계급의 사람들끼리는 관습적으로 지배계급 내에서 통용되어 오던 예(禮)를 사용했고, 하층민의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어 강제한 법(法)을 사용했었거든요. 여기서 하층계급에까지 예에 의한 다스림을 실현하자고 한 것이 원시 유가의 주장이고, 반대로 상층계급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 법가의 주장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쪽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법의 고자 역시 좀 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층 계급이 지켜야할 법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상층 계급에서 강제한 규율이죠. 법의 고자 파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그 규범을 판단하는 해태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법을 하층 계급에게 부여해 주는 해태가 지배 계급을 비유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게다가 고대 중국의 법이 로마법처럼 성문화된 형태도 아니었음을 생각해 보면, 자의적으로 선악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해태의 모습에서 자의적으로 하층계급에게 지배계급이 원하는 규율을 강요하는 모습을 겹쳐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글자의 의미나 해석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원래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法이란 개념이 서양의 law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한 번 상기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론에 의존해 글을 써 내려가 보았습니다. 시대와 환경, 문화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하잖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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