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얼마 전 국방부에서 발표했었던 불온서적 23종 세트에 이 책도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불온도서로 지정하기만 한 게 아니라 각 책들을 기준에 따라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의 세 가지 분류로 구분했는데, 이 책의 경우 '반정부-반미'의 범주로 나누어집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나오길래 경제학 관련 서적이 '반자본주의'도 아니고 '반정부-반미'에 속하는 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불온서적 관련 기사에서 꼭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책이 이 책이라 눈에 매우 띄었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 읽고 싶었던 다른 책들과 함께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읽기 위해 구입했습니다만…… 읽다 보니 내용의 깊이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몇 번이나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책의 주제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New Keynesian 입장에서의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 시장의 확대와 금융의 개방 등,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여러 명제들은 실제로 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해가 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은 모두 시장에 대한 통제로 이를 달성했다는 것을 여러 풍부한 이론과 사례를 통해 증명합니다. 그리고 현재 주장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의 우월적 지위를 고착화하는 역할을 함을 보이고, 이것이 결국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말을 가져옴을 주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를 강요하고 있는 여러 경제학자들과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을 빗댄 말입니다. 선진 국가 중 자유 시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사례가 실질적으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 있는 나라들에게 자유 시장만이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선물'해 준 단어이죠. 책 전체에 걸쳐 '이 사기꾼 같은 놈들아!'이라는 직설적인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잘 봐봐, 너희가 말한 게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 않니?'라는 부드러운 주장을 탄탄한 증거와 논리적 구조를 통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례들 중에 한국의 사례를 예로 제시한 것이 많아서 이해도 빠르게 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이 2007년 10월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가 시작된 지 반년이 넘은 시점입니다), 현재 세계의 금융위기 및 한국의 현실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여 글을 쓴 듯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현재 엄청난 국제문제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미국 정부가 대처하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적 정책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구제, 모기지 기관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AIG에 간접적으로 자금 지원을 한 데 이어 이제는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잖아요.(비록 구제금융안은 방금 전 하원에서 부결되었지만, 광범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 시도라는 점에서 아직 언급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약간 극단적인 입장이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따르면 이런 시도는 결국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하고, 경제 주체들의 고통만 가중시키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활동해 왔던 미국과 그 영향을 받아 설립된 세계 금융 기구들이 10년 전 동아시아의 경제위기 때 각국 정부에게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시장논리로 자유방임적인 경제정책을 펼치라고 자본을 이용한 강제를 하였던 것과는 참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만약 정말로 신자유주의가 경제에 있어 유일한 정의라면, 이번 금융위기 역시 미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그냥 시장의 논리로 정리되도록 방관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정을 위해 통화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요.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과거 대공황 때 미 정부가 취했던,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시킨 방법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게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맞는 방법이잖아요? 하긴 '미국이 손해 보는 무역이 바로 불공정 무역이다'라는 주장까지 하는 나라에서 타국에 강요하는 정책과 자국에 사용하는 정책이 다른 이 정도의 표리부동함은 우스울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현 FRB의 의장 역시 새케인즈학파이군요 -_-;
그리고 우리 위대하신 이명박 대통령 각하……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면으로 바라보아도 제대로 된 정책을 펴는 걸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수행한 결과,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불안이 증가하고 경기가 침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더 추진하겠다고 하니 이건 뭐 답이 없습니다 -_-;; 아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만 봐도 지금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니라 국가 규제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와서 공기업도 다 팔아치워 버리고 금산분리도 완화에서 '미국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만들겠다고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다섯 개의 투자은행이 어떠한 파국을 맞았는지 정녕 모르는 걸까요? 이에 대해 공기업의 민영화를 다룬 책의 일부 구절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실제로 부패한 공무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민영화를 밀어붙이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민영화를 하게 되면 후임자와 뇌물을 나누어 가질 필요도 없고, (국영 기업 관리자들이 원료 공급자에게서 갈취할 수 있는 리베이트 같은) 장래에 발생할 모든 뇌물의 흐름을 '현금화'할 수도 있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183p]
책을 읽는 도중, 이상하게 이 말이 머리 깊숙히 각인되더라고요. 이상하군요. 왜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국가의 지도자는 윤리의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한 교훈을 지난 1년간 배웠고, 앞으로 4년간 더 배워 나갈 예정입니다. 앞으로 더욱 들어갈 수업료가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물론 그 뒤의 내용을 더 읽다 보면 '반드시 부패가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는 챕터도 있습니다만, '경제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지 '좋다'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 나갔군요 -_-;;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이 국방부의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이유는 분명 '반정부-반미'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인 지금도, 저는 도대체 이 책이 '반정부-반미'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미국 정부가 사실상 포함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책 뒤 각주에 박정희가 젊은 시절 공산주의 활동을 했었다는 기술이 있어서일까요? 둘 다 사실 아닙니까. 미국이 자신들에게는 적용시키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전세계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사실이고, 박정희가 젊었을 때 여수-순천 반란사건에서 공산주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공개적으로 공산주의임을 부정하여 사형을 면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온도서로 지정한걸까요? 애초에 저 기준 중 '반정부-반미'라는 애매모호한 기준도 우습습니다. 이 책과 같이 학문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제재 대상이 된다면,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전체주의·파시즘이죠. 게다가 이처럼 현재의 경제 구조에 건설적인 비판을 가하는 책을 금지시키는 것은, 스스로를 고사시키는 행동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조건 옳다는 강력한 흑백논리와 아집, 독선에 빠져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요……라고 쓰다보니, 현 정부가 저런 이분법적 독선 정부라고 불리고 있는 사실이 확 떠오르는군요. 참 일관성은 있어서 보기는 좋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그 위기의이유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이 필요할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학적 기초가 없더라도 주장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경제학적 기초가 있으신 분들은 그 논리의 정교함에 감탄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저도 경제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_-;;) 요즘과 같은 시대에 꼭 읽고 참고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