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늑대와 향신료 (狼と香辛料)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1. 라이트노벨 기반 애니메이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라이트노벨이 원작인 애니메이션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인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하면서 상대적으로 긴 소설의 줄거리를 짧은 애니메이션에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전체 줄거리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고, 마찬가지의 이유로 애니메이션 내에서 캐릭터가 너무 남용되어 각각의 매력도, 전체 줄거리도 모두 흩어놓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경우나 애초에 속편을 계획하고 작품을 만들 경우에는 그 결말이 심히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적당히 후반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정도로 끝을 내 버리는 거죠. 물론 게임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경우가 그 방대한 줄거리와 설정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런 작품을 찾아보는 이유는, 작품의 소재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라이트노벨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 세계관의 다채로움을 들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자주 접하는 것과는 다른, 낯선 소재와 특이한 소재를 동원하여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것은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이죠. 그래서 매번 보고 나서 투덜거리는 경우가 더 많으면서도 이렇게 또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는 것이겠죠.


2. 늑대와 향신료의 배경

  위에서 설명드린 이유로 인해,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가지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도 상당히 재미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이함은 '늑대와 향신료'라는 작품의 제목 자체에 모두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늑대

  먼저 '늑대'의 경우, 주인공인 로렌스와 함께 다니는 늑대의 화신(化神)인 현랑(賢狼) 호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긴 시간을 살아온 늑대로, 체험과 세월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달 밝은 밤 달빛을 등지고 바위산에 앉아 인간을 내려다보는,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세월을 잊은 듯한 한 마리의 거대한 늑대'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니 부언을 해야겠습니다. 물론 '가끔' 필요할 때 저러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그냥 촐랑대고 먹을 것을 밝히며 주인공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나이 많은 소녀-_-의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다소 종잡을 수 없는 듯하고, 어떤 때는 순수해 보이면서 또 다른 때는 철저히 계산적인 것 같기도 하죠. 또 어떤 때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때는 그냥 단순히 가지고 노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작품 내에서 여주인공의 위치에 있는 호로의 이러한 성격은, 요즘같이 외강내유형의 '츤데레'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시대에 더욱 빛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상이 되는 이성을 확실히 좋아하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표현을 거칠게(?)하는 츤데레 캐릭터와는 달리,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또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것에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츤데레보다 이 쪽이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캐릭터이죠.


2) 향신료

  음식의 향과 맛, 보존을 위해 첨가하는 향신료는 오래전부터 필수적인 상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과 그 배경이 비슷한 중·근세 유럽에서는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값비싼 상품으로 인식되었었죠. 따라서 향신료는 이 작품의 큰 배경인 '중세 유럽과 비슷한 세계관'과 주인공의 직업인 '행상인', 즉 상인 계층의 이야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입니다. 중세의 상인 계급이 작품 내에 등장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지만, 이처럼 상인의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다룬 것은 확실히 흔한 소재는 아닙니다. 

  특수 계층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필수적으로 해당 작품에 대한 약간의 전문 지식을 다루게 됩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중세 조합제도, 어음제도, 금·은화의 순도와 화폐가치에 대한 설명 등이 등장합니다. 이를 가지고 이 작품이 경제학적 바탕을 지녔다고까지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정도 화폐경제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작품 내의 주요 사건이 상품거래와 연관되어 생겨나기도 하니까요. 이는 신선한 이야기 전개방식임은 분명합니다. 


3. 주요 사건


1) 전반부 (1~6화)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은화의 화폐가치 절상과 절하에 얽힌 음모와 연관된 사건입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여러 은화 중 하나인 트레니 은화를 해당 발행 정부에서 평가절하하기를 원하는데, 그를 위해 은화를 수거할 필요가 있으므로 정부보다 빠르게 은화를 매점하여 그 은화로 정부와 협상을 한다는 발상과, 그를 역으로 이용한다는 발상이 부딪히며 이야기가 진행되죠. 이는 사건이 진행되는 주요 원인이 되긴 하지만,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사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이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그 과정에서 깊어지는 로렌스와 호로의 신뢰'가 주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_-;; 하지만 이에 대해 약간만 이야기를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금·은본위제 하에서 귀금속으로 만든 화폐를 법정 통화로 사용할 때, 작품의 트레니 정부처럼 화폐의 순도를 낮추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의 절대 수량을 늘려주기 때문에 정부 재정에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인데, 그 이유는 화폐 자체의 액면가가 낮아지고 화폐 유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겨나는 인플레이션에 의해 정부의 화폐에 대해 민간이 가지고 있는 신뢰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외 거래에서 해당 화폐에 의한 결제를 꺼린다는 말도 되지요. 이의 대표적인 예가 로마제국입니다. 전성기 때 순도 98%의 은화를 제조하던 로마는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화폐의 순도를 지속적으로 낮춘 결과, 화폐의 순도가 1%까지 내려가서 대외적 공신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죠. 작품 내에서도 트레니 은화의 인기가 높은 이유로 순도가 높음을 들고 있습니다. 결국 화폐의 순도는 해당 나라의 국력과 화폐의 공신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해당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일수록 이는 더욱 강하게 나타나죠.


2) 후반부 (8~13화)

  후반부의 큰 사건은 로렌스의 신용거래로부터 생겨납니다. 신용거래로 사들인 상품인 병구가 해당 도시에서 가격이 폭락해 버림에 따라 헐값이 되고, 로렌스는 신용거래로 생겨난 빚을 갚지 못하게 되어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늑대가 나오는 위험한 숲길을 통한 금 밀수를 시도하게 되죠. 물론 여기서 이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신용거래니 금 밀수니 하는 이야기보다 로렌스를 위한 호로의 활약, 호로에 의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를 감싸주는 로렌스, 새롭게 등장한 노라와의 사건을 통해 더욱 돈독해지는 호로와 로렌스의 관계를 보기에도 바쁘니까요 -_-a 특히 이 부분은 중세의 실물경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조합 제도, 신용 거래, 높은 관세와 독점·그에 따른 밀수) 딱히 깊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관대한 로렌스'와 '매력덩어리 호로'를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었죠. 거래에 있어서는 냉철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로렌스의 모습은 부드럽지만 동시에 강하기도 한 남자의 매력을 보여주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부와 같은 호로가 로렌스를 지키기 위해 보여주는 열정은 정말 '캐릭터의 매력이 무엇이다'를 보여주었거든요.


4. 마무리

  이 늑대화 향신료는 현재 2기가 제작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마음대로라면 호로가 북쪽 땅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하지만 아직 원 소설도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니 그건 좀 힘들겠죠 -_-a (이래서 라이트노벨 원작인 작품이 싫어요 ㅠㅠ) 하지만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줄거리 진행 완급을 조절하면서 진행을 해 준다면, 계속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기가 매우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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