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에 대하여


  본문은 제가 대학교 교양수업인 '현대사회와 의사소통'에서 자기소개의 목적으로 제출했었던 글입니다. 지금도 학기 초 수업시간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고 하면 특기란에 '수능', 취미란에 '온라인 게임'을 적어 내는 성실함(……)을 보여주곤 합니다만, 저 때도 여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ㅋㅋ 참고로 이 글은 무려 수업시간에 조원들 앞에서 발표까지 했던 글이랍니다 -_-;;;;;;


<'귀차니즘'에 대하여>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한가한 주말에 이불 안에서 부드러운 감촉과 따듯한 온기를 늦게까지 즐겨보신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느지막한 기상과 함께 나른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은, 물론 매일 지속된다면 곤란하겠지만 하루하루의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는 인간에게 분명 어떠한 종류의 안도감과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을 매일 살 방법이 있다’ 또는 ‘이처럼 느긋하게 살지 못해도 적어도 현재의 삶보다는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하면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겠지만, 곧 고개를 흔들게 될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심한 경쟁사회인데,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자신만이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면 이는 곧 사회적 경쟁력을 상실하고, 삶의 질을 저하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는 요즘과 같은 지속적인 경제 불황시기에 웬 사치스러운 말이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삶의 질을 하락시키지 않고도 훨씬 더 많은 여유를 가지고 사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요즘 웰빙이라는 말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말도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의 일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삶의 질을 유지하고도 더욱 많은 여유를 가진다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귀차니즘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이 말에 대해 대략적인 의미를 아시는 분은 벌써부터 피식 웃음을 터뜨리실 겁니다. 처음 들어보는 분들을 위해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귀찮음’이란 단어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어떠한 행위를 단지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 것을 통틀어 일컫는 행위'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 정의를 듣고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생각해 봐도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게으른 것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아니 거의 극단에 위치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귀차니즘을 실천해 보지 않고 단지 외부의 잘못된 편견만을 들어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귀차니즘은 게으름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다르기에 얼핏 들으면 비슷한 정의를 지닌 이 둘이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까요?

  우선 귀차니즘은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단지 상황을 회피하는 게으름과 달리, 귀차니즘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선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일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합시다. 게으른 사람은 단지 이를 하지 않으려고 피하겠지요. 하지만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은 이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교수님을 쫓아다니며 과제 제출 기간을 연장받던지, 아니면 낮은 학점을 받아 다시 재수강을 하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마감기한에 맞추어 제출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욱 편하고 덜 귀찮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웹서핑을 하시던 분들은 ‘귀차니즘의 실태’라며 컴퓨터 옆에 라면, 쓰레기통, 침구 등의 온갖 잡동사니가 나열되어 있는 한심한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물건 가지러 가기 귀찮아서라기보다 쓸데없이 움직이는 동선의 거리를 줄여서 그만큼의 여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귀차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방 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이나, 그 시간에 컴퓨터만 한다는 점일 텐데, 사실 방 안이 지저분한 것은 개인적 생활 태도의 문제로서 옆에 쓰레기통 하나만 있어도 해결되는 것이고 컴퓨터만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 시간에 다른 여가활동을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이 되니 이러한 사소한 문제가 귀차니즘의 본질을 흐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귀차니즘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자신이 이것저것 하기 귀찮다면 자신이 이다음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만을 준비하고 그것만을 신경 쓰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따라서 귀차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세워 귀찮음을 발생시키는 요소를 줄여나가게 됩니다. 경영학 중 생산 및 운영관리에서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안전재고 등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여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린 생산과 같은 방법을 일상에 도입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귀차니즘을 체득하신다면 취직을 위해 토익을 공부하며 자격증도 신경 쓰고 고시도 보려 하는 동시에 매주 로또까지 긁는 불편함을 일소할 수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렸듯이 귀차니즘은 단순히 일을 팽개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귀차니즘을 몸에 체화하셔서 ‘일요일 아침의 느긋함’을 일상 곳곳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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