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히스토리채널 '세상을 바꾼 사람들' - 히로히토, 히틀러 편의 비교


  과거 히스토리채널에서 방영해 주었던 다큐멘터리 중에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라는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1994년에 만들어졌더군요. 다큐멘터리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심심하면 한 번씩 보곤 하는데, 오늘 역시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틀어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로히토 편을 보고 무언가 하나의 자그마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히틀러 편을 일부러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다 본 지금, 살짝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대로라면 그냥 보고 잊어버렸을 다큐멘터리에 대한 글을 주절주절 써 봅니다.


1. 논점의 차이 - 히로히토 편

  히로히토 편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보아 하나입니다. '히로히토에게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이죠. 그리고 이에 대해 나름 객관적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기본적인 논조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논조를 전개하는 어조입니다. 아직까지 2차 세계대전 때 히로히토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얼마나 일본의 의사결정 방향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히로히토가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의 상징적인 국가수반이었기 때문에 누명을 쓰고 있다는 주장이 과연 맞는지 틀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아직 이 사실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실제적인 책임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히로히토가 무력했다는 것, 보편적인 상식 수준의 인간관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 전후 자신의 신성을 포기하고 '모범적인 중산층'으로의 이미지 변화를 적극적으로 꾀했다는 것 등을 부각하고 있거든요. 이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상통합니다. 비록 수많은 일본 및 식민지(사실 식민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습니다)의 젊은이들이 '천황의 이름'아래 죽어나갔고, 제국주의 일본의 최고수반인 일본의 왕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거든요. 마무리 즈음에 '실제 책임은 물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의적 책임은 확실히 있을 것'이라는 한 마디가 이를 다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를 보고 있으면 객관적인 척하며 실제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진리인 양 주장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모모 신문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어떠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인 서술은 존재할 수 없고, 자신의 주장을 담지 않은 글은 존재하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사실'만을 말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 양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청자를 기만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심히 거슬렸습니다. 더욱이 제국주의 일본의 희생양이 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이러한 서술 방법은 더욱 거슬렸고요.


2. 히틀러 편의 논점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진을 비난하기 전에, 다른 정보를 좀 더 찾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논지 전개 방식을 도구로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부러 나치 독일의 지도자였던 히틀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로 했죠.

  그런데 히틀러 편은 히로히토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그 전개 분위기부터가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나타난 '개인 히틀러'는 열등감에 가득 차 있고 기만에 능한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어 있거든요. '정치 깡패'가 독일 국민을 기반·협박하여 권력을 탈취하고, 각국에 사악한 마수를 유럽 각 국에 뻗쳐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는 논조이더라고요. 히로히토 편에서 '시류에 휩쓸린 비운의 인간 히로히토'를 강조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히틀러 편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이용하여 전쟁을 일으킨 악당'으로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전제적인 권력을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집권한 히로히토와, 나치라는 정당을 통해 민주적 절차를 기만하여 정권을 획득한 히틀러를 같은 '전쟁의 주동자'로 파악할 수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서술 관점 자체가 너무 많이 차이나잖아요 이건. 사실 히로히토와 같이 히틀러에게서도 긍정적인 면을 엄청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많은 지도자 중 자기 관리가 매우 엄격한 지도자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여자문제가 복잡하지도 않은 편이고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을 정부 주도의 군수산업 발전 정책으로 성공적으로 벗어나기도 했고, 세계 최초로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부 홍보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히틀러의 '업적'들은 이 '객관적인' 다큐멘터리 내에 단 한 줄도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3. 더러운 수법

  이는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사례를 목격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나치 독일의 잔혹함은 먼 세계의 일로 느껴지는 저와 반대로, 저 다큐멘터리의 제작진은 나치 독일의 부정적인 면을 훨씬 강하게 듣고 체험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비슷한 사례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는 모습은 이해해 주기가 힘드네요. 막말로 남의 일이니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요. 자신들이 그렇게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면, 역지사지로 한번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일본군에 의해 '뉴욕 대학살'이 일어났더라도 NBC에서 이러한 우스운 논점의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무엇보다 객관적인 척하면서 특정 관점을 편들어주는 이러한 다큐멘터리는 차라리 나오지 않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러한 관점에 대한 불만도 불만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이 다큐멘터리에는 나타나고 있거든요. '히로히토는 일본 군부에 의한 희생자일 뿐이다'라는 주장을 더욱 노골적으로 담은 프로그램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은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에게 자신의 의지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니까요.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만을 알려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사실만을 골라 방영하여, 제작진의 가치판단과 같은 방향으로 시청자의 의지를 이끌어가는 작품은 정말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우리나라의 주류 신문들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고요. 이러한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였다면 애초에 'Documentary'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지를 말았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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