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바이어던에 대한 잡담


  리바이어던을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무려 2주가 지난 지금, 사실상 책을 읽는 속도가 정체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약간 변명을 해 보자면, 너무 복잡해요 ㅠㅠ 예전에 칸트 할아버지의 저작을 읽어보겠다고 설레발을 치다 결국 포기했던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나마 읽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저는 정치외교학과도, 철학과도 아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방법론을 배운 적이 없어서 더욱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 같아요. 그나마 철학과 수업 몇몇 가지를 전전하면서 귀동냥으로나마 배웠던 것에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ㅋ

  어쨌든, 책을 읽은 지 30분이 지나서야 조금씩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류의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많이 드네요. 아무래도 십여 년 만에 국내에 나온 리바이어던의 완역이라는 떡밥에 단단히 물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구 들고 있습니다 ㅠㅠ 머리가 살살 아프네요. 하지만! 떡밥에 잘 물렸다는 생각도 솔솔 생겨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이런 종류의 책을 조금 더 예전에 읽었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점이에요. 흑, 정말 이런 대단한 책들을 언제 접하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다음에 제 자식에게는 조기교육으로 초등학교 때 읽도록 해……서는 또 안 되겠지만 -_-;; 어쨌든 아쉬운 마음이 자꾸 생기는 건 사실이네요. 물론 지금이나마 늦지 않았으니 렙업 따위 때려치우고 책을 좀 열심히 읽으셈! 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공부를 하면서 쉬는 시간에 또 이런 책으로 머리를 헝클어놓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엉엉엉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떠올려보면, '성악설=홉스=순자, 성선설=루소=맹자, 성무선악설=로크=고자'라는 내용이 생각나네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저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유입니다 ㅠㅠ 끼리끼리의 결론이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요. 물론 처음 배울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쉬운 조합이기는 하죠. (하긴,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신 교수님들이 교과서를 집필할 때 저렇게 써 두셨겠죠. 지금의 교육과정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저걸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으음 한층 살벌해지는 입시지옥이 연상되네요 ㅠㅠ) 여하튼 그 교과서에서는, 리바이어던을 쓴 홉스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가정한 인간관에 기초한다는 내용 한 줄이 다입니다. 저도 성악설을 상당히 싫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리바이어던을 읽고 있는 요 며칠간, 이에 대해 너무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처절하게 하고 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그 기초를 당시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에 두고 있습니다. 초반부 전부가 인간의 인식 방법과 과학적 방법론, 기계론적 세계관의 설명과 정의를 다루고 있거든요. 아마 이 홉스라는 분은 학문에 있어서는 굉장히 치밀하고 깐깐한,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논리를 위한 기초적인 세계관을 완벽하게 정리한 상태에서 책의 출발을 원하시는 듯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리고 그 세계관은 타당하다고 관찰되었으며 현실에 기초를 둔, 기계론적이고 유기체적인 세계관이고요. 물론 요즘은 '전체가 부분의 합과 같다'라는 명제가 한물 간 주장이기는 합니다만, 저 때만 해도 진리처럼 여겨지던 말이잖아요.

  이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논리 구조를 갖춘 후, '자연상태'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상당히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악하다. 왜? 악한 행동을 하니까. 아니면 원래 성질이 더러우니까'로 전개되는 성악설이 절대로 아니더라고요. 애초에 인간이 악하다는 말을 했다고 정의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이가 거의 동등한 힘을 소유하고 있고,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침탈이 용이한 상황에서는 자위를 위해 권력의 증대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인간의 근본적인 천성이 선함을 가정하는 말이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그를 이용한 논지의 전개는 정말 멋지네요. 요즘 반해버릴 것 같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ㅋㅋ

  그리고 뭐랄까,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고 비교·측정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정하는 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사상적 기초가 시작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인식기관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정의하고, 특정 기준에 따라 그들을 분리하여 정의한 뒤, 최종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점이 그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 정의 중 하나가 '모든 것을 자본으로 치환 가능하도록 만들어가는 사회'이잖아요. 그러한 면에서 넓게 보아 현대 사회의 기반은 역시 근대에서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책을 더 읽어가면서 마저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리바이어던의 주장이 시작일 뿐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머리를 굴려가며 읽어야 할까 막막해지네요. 그냥 다른 분들이 깔끔하게 요약해 준 입문서나 다시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뭐랄까 그런 책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다른 분들이 먹기 좋게 씹어준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비록 갓난아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소화가 안 되어 배탈이 날지라도 원래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기네요. 그래서 지금 한 입 베어 물고 배탈로 고생 중입니다 ㅠㅠㅋㅋㅋㅋㅋ 에잇 모르겠네요. 읽다 보면 끝이 보이겠죠 뭐 ㅎ


  아, 그리고 이 얘기하니까 문득 생각난 사실 하나…… 제 블로그는 이상하게 중간고사 기간 직전이 되면 방문하시는 분들의 수가 증가한답니다. 그것도 특정 키워드가 막 중복되어서요 ㅋㅋㅋㅋ 물론 생각을 교류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지만, 이 블로그 주인장 자체가 그분들이 원하는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니 아마 낚시블로그에 당했다 (……)라는 생각을 하실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흑, 사실 공들여 쓰는 애니메이션 리뷰보다 심심해서 남긴 뻘글 때문에 들어오시는 분이 더 많으셔서 상처받았어요 ┒- 제가 글 쓰는 게 어설픈 레폿 형태와 비슷해서 낚이시는 분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색엔진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볼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면 기껏 블로그에 글 쓰는 의미가 없잖아요? 매우 부끄럽지만, 그냥 당분간은 이대로 놔둘까 합니다. 오랜만에 키보드에서 손 가는 대로 타자를 두드려보니 재미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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