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외투


외투 표지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한 손에는 약, 다른 한 손에는 휴지를 들고 살았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머리가 아파 말 그대로 눈 깜빡이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본의 아닌 시간 죽이기를 하면서 조금 얇은 책이라도 읽어야겠다 싶어 최근 산 책 중 제일 얇은 소설을 한 권 집어 들었습니다. 뭐랄까, 얇은 책이 읽기 쉬운 책은 분명 아니지만, 분량이 짧다는 장점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 -_-a 그래서 집어든 고골리의 '외투'라는 소설은, '코'라는 소설과 함께 묶여 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작가의 염세주의적인 분위기를 제외하면 같이 묶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 때문에 따로 다루어야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소설의 내용은 짧습니다. 아카기 아카기에비치라는 구등관 직책의 공무원이 그 주인공인데, 삶에 아무런 화려함이라곤 없는, 그야말로 단조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의 평화로운 삶은, 낡은 외투에 의해 흔들리게 되죠. 더 이상 수선할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외투가 낡아버려서 아카기는 새로 외투를 구입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거든요. 어떻게든 지금의 외투를 살려보려 하지만 결국 그를 포기하고 새로운 외투를 구입하고자 마음을 먹은 아카기는 그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재봉사인 페트로비치와 가격에 대한 협상을 한 후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 생활을 시작하고, 가능한 한 최고의 외투를 얻기 위해 재료를 계속해서 물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죠. 그래서 마침내 그는 외투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환희에 차서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하죠. 직장에서도 많은 동료들이 아카기의 새로운 외투를 칭찬해 줍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른 관리가 자신의 집에서 축하연까지 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아카기는 평소의 적막한 생활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활기를 띈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즐거운 파티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는 그에게 갑자기 시련이 닥칩니다. 광장에서 웬 남자들에게 외투를 빼앗겼거든요. 그는 그 외투를 찾기 위해 '난생처음' 모든 힘을 다하여 노력하나, 결국 외투를 찾는 것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한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외투를 빼앗는 귀신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방황하였죠. 어찌 보면 상당히 어이없는 이야기라는 느낌도 듭니다. 외투 한 벌로 인해 인생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고, 그 외투를 잃어버림으로써 결국 죽음을 맞게 되어 귀신이 되어서까지 외투를 찾아 돌아다니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소 황당하게 생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되면, 위의 줄거리 요약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이유로 우선 아카기라는 사람이 단순히 위와 같이 단조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소설의 전반부에서 암시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지겨울 정도로 조용한 자신의 삶에서 나름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조용한 삶 자체가 주는 안락함, 그리고 정서하는 도중 마음에 드는 글자가 나오면 그것의 사본을 만들어 수집하는 재미 등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외투'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것이 아닌 물건이라도 그에게는 단기적인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며 약간 희극적으로 그려지는 아카기 아카기에비치라는 인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풍자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에 적응하면서 살고 있고, 그것에 대해 어느 부분에서는 만족을 느끼고 있는 모습은 아카기나 대다수의 현대인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투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이 소설에서는 '외투'라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표현되었지만, 이를 약간 추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자신에게는 목숨을 걸 정도의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 정도의 가치는 가지지 않은 물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대학 입시가 있겠군요. 고등학생일 때는 대학 입시야말로 삶의 전부이자 목표의 최종 단계처럼 주입받지만, 막상 대학교에 와 보면 이제는 취업이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느껴지잖아요. 물론 취업을 한 이후에는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가 되겠고, 그 이후에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목표가 되겠죠. 이처럼 '외투'는 그 자신의 삶에서는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는 희망의 종착점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그 목표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서 대답이 막힌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물론 '외투'를 이와 같은 '단기 목표'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굴레에 얽매인 현대의 소시민을 보고 만 지금의 저로서는 다른 해석을 하기가 힘드네요. 아마 몇 개월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소설을 읽으면 조금 더 개괄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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