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쾌도난마 한국경제
책 표지 좌측 상단에 표기되어 있듯이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이 흔히 갖추고 있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대화 및 토론체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적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훨씬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다른 책에 비해, 이 책은 그 비판 주장의 논지가 약간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론서가 아닌, 대화 형식의 책이다 보니 대화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추가로 언급하기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장하준 교수님이 쓴 다른 책인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면, 훌륭한 논리 구조와 근거를 갖춘 이야기가 책 전체에 걸쳐 나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에게 있어 강렬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잘못 이해되고 있는 보수·진보에 대한 개념과, 그에 따른 한국 사회의 해석입니다. '쾌도난마'라는 제목의 단어나, 표지에 보이는 '격정대화'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느낌이 책의 내용과 정말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지루한 이론서보다 대화체로 이루어진 이 책의 형식 쪽이 훨씬 이해가 빨리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히 이 책은 흔히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시사점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흔히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를 비판하는 책이나,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를 비판하는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보수는 물론 진보에 대한 비판까지 담고 있거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보수-진보의 논의는 대부분 학문적인 바탕이 심하게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교수 집단에서 쓰는 간단한 칼럼에조차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말입니다. (뭐, 이 경우는 대부분 보수 진영에 해당되는 말이기는 하지만요)
물론 그분들이 학문적인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교수님들이 학문적 소양이 부족하다면, 이 나라는 정말 막장 중의 막장이겠죠. 제가 부족하다는 학문적 바탕은, 경제학적인 소양입니다. 2000년 초반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삼고 있는 안정된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인 분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배움이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사실 이는 지식인 집단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조차 하려 하지 않으니 더욱 큰 문제이죠 -_-;;;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책에서 다른 일반적인 주장들과 가장 다르게 재평가를 내리고 있는 부분은 박정희 시대부터 시작된 개발독재와 한국형 경제 체제입니다. 흔히 보수 진영에서는 '박정희 덕분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음'이라고 말하며 박정희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고, 진보 진영에서는 '군부 독재와 유신 긴급조치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1997년의 경제위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를 만든 사람'이라는 비판만을 하잖아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어도 한국의 경제 발전 면에 있어서의 박정희 체제와 재벌로 대변되는 한국형 경제구조가 당시에 취할 수 있었던 최고의 방법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님이 쓴 다른 책인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면, 이와 같은 주장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이야기를 앞뒤 다 자르고 간단히 말하면, 국가의 경제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보호 무역과 장벽이 필수적이고 그 안에서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육성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의 강력한 보호주의 무역과 정부 통제적인 경제 성장 방향 제시, 그리고 국가 자원을 집중하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재벌 구조는 한국 경제가 성장하도록 엄청난 공헌을 해 주었다는 말이 되지요.
하지만 이것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현재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박정희 체제의 공을 인정하는 것과 지금의 보수 진영을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거든요. 도리어 지금의 보수는 박정희 때와 전혀 다른 경제 구조인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진보 역시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에 매몰되어 있고요. 박정희를 찬양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우파나,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적 평가를 위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좌파 두 쪽 다 현재의 한국 경제에는 맞지 않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관점과 사회적 위치와 별개로 한국 사회의 주체들은 모두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고, 이 때문에 사회 유지의 기본이 되는 구성원 간의 유대감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이 책은 절절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석훈 교수님의 '88만원 세대'를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 책 만으로도 이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이러한 결론을 정리한, 책의 마무리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 시장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모든 경제 주체가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에 따라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본은 주주에 대한 책임만 이야기하면서 공공성 따윈 제쳐둔 지 오래고, 정부도 말로만 공공성을 떠들지 실제로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책임만 지려고 하는 식이죠. 더욱이 노동자들도 말로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간은 물론이고,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연대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산별 노조도 형식적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실상은 기업별 노조만 엄청나게 강화되어 '우리 회사와 조합만 잘 되면 된다.'는 일종의 시장 논리에 빠져 있는 식이고……"
- 장하준·정승일,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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