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통일이 필요합니다


음…… 먼저 이 글은 어느 정도의 근거나 논지를 갖추지 않은 채, 직관적인 느낌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쓴 글이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상당히 보기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정치 상황에 앞서, 사회 전체가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합니다.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죠. 즉, 정부에 매일 욕을 하는 우리들의 정치 수준이 반영된 게 현 정부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 '우리들'에는 모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므로, 경제 계층별·세대별로 수준·사고·배경 등의 차이가 많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수준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은 1950년~1953년 동안 치러진 한국전쟁(6.25)을 제외하면 국가 기반이 뒤집힐정도로 거대한 충격을 받은 일이 없는 사회이잖아요. (물론 유신, 석유파동, IMF 구제금융 등 위기가 여러 차례 있기는 했습니다만,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의 생명·신체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거대한 충격은 저 때가 유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세대도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기본적으로는 같은 가치관 ― 비록 현 사회 활동 세대들이 이전 세대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지식수준이 높아졌으며, 전쟁의 직접적인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 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 사회의 '문화'는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성리학적 향촌 질서가 여말선초에 유입되기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정착되는 데에는 2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던 것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로 36년 (한 세대에 영향을 주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죠)을 보냈어도 큰 틀에서의 사회 가치관과 풍습이 바뀌지 않은 걸 생각해 보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60년 정도가 지난 뒤의 지금 세대가 앞선 세대와 눈부시게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비록 표현하는 말과 추구하고자 하는 행동은 각기 다르지만, 구성원들의 근본 목표는 비슷한 곳을 지향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므로 가장 최근에 우리나라 사회에 큰 영향을 준 한국전쟁이 그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를 생각해 보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를 일부나마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그 폐허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제일 큰 정신적인 충격은, '북에서부터 내려온 잔인한 빨갱이들'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강하게 남아있던 우리나라에서, 마을 전체를 피난 가게 만들어 공동체를 흩어놓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살해한 북한군은 악마와도 같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군이 남한 내에서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경우가 있는데, 북한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힘들겠지요. 만일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해도,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은 것은 북한 역시 마찬가지인 데다 현대전이 총력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 충격이 없다고 보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맞물리면서 남북한 모두 관용이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생존의 기로에서, 제3의 진영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덕분에 남한에서는 자본주의를 제외한 모든 선택지가 말살된 국가가, 북한에서는 공산주의를 제외한 모든 선택지가 말살된 국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두 사회는 모두 관용이 없는 사회였기 때문에, 다른 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극단적인 파시스트 국가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한 모두 겉으로는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기는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헌법에 모두 '민주 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고, 북한 역시 정식 명칭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거든요. (북한 헌법이 어떤지는 잘 모르니 죄송하지만 그냥 넘어가야겠네요 -_-a) 하지만 이 두 나라는 모두 민주주의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다원성'이 극도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아오지 탄광'이나 남한의 국가보안법 양 쪽 모두 사실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사회 일반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토론이나 교육 등을 통해 설득하거나 최소한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통해 배제시켜 버렸다는 점에서 남북한은 모두 극단적인 파시스트 국가라는 말을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다원성이 결여된 걸 단순히 편협한 선택이었다고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부수립 초기의 불안정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제도, 더욱 넓게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전된 지 60년이 지나 상당히 안정된 사회를 가진 요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주장은 약간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 사회가 내부적으로 상당히 튼튼해졌고, 어쨌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님이 전쟁을 안 겪어봐서 철 모르는 소리를 하시네염. 우리나라는 아직 정전 중인 국가이고, 위에는 항상 침략 기회를 노리는 북한이 무기를 갈고닦고 있어염'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꼭 등장하실 겁니다. 저는 올바른 민주주의 가치관을 실행시키는 것과 국방은 별개라는 것, 사회주의자가 곧 친북세력은 절대 아니라는 것, 건전한 민주주의 가치관이 올바르게 실행되는 사회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더욱 강한 내성을 갖는다는 점 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그다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논란은 가치관에 근거한 현실 인식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우리나라가 1970년대 이후 국방예산이 북한의 국방예산을 한참 넘어 지출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도 치킨게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전면전이 불가하다는 점이나, 산업 발달로 인해 전쟁 수행 능력이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말해봤자 잘해야 '현실을 모르는 놈'소리를 들을 테니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분들의 주장 역시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실제로 북한이 치킨게임을 각오할 경우, 우리나라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물론 이 쪽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낮게 느껴지지는 하지만, 어쨌든 현실에 나타날 수 있기는 하잖아요.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좁게는 우리나라, 넓게는 남북한 모두가 지닌 트라우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겪은 충격적인 경험이 현재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지닌 사회에서는 절대 건전한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이 타개되기 통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남한과 북한 모두 적대자로서 존재하는 상대방의 존재를 지워버려야 한다는 편이 맞겠네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통일이 되거나, 자고 일어나니 북한 땅이 전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거나, 북한 전체가 중화인민공화국 조선성으로 병합되어 버리거나(물론 이 경우는 트라우마가 더욱 악화될 것 같긴 합니다 -_-;;) 등의 선택지들을 고를 수 있겠네요. 어떠한 경우이든지 적대적 존재로서의 북한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두,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신뢰와 협동이 있는 쪽이 그렇지 못한 쪽보다 생존에 있어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 사회에서 단기적으로 그런 신뢰와 협동은 외부의 주적 형성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주적으로 만들어 사회 단결을 노렸던 것처럼요.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신뢰는 내부 구성원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무엇보다 구성원들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 명을 독가스로 죽인 사회는 분명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지요.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도 나치에 비해 그 정도는 덜할지 모르지만,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그를 때려잡기 위해 구성원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해 온 것이 어느덧 6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에서 관용은 거의 소멸되어 버렸지요. 이는 국회 의사당이나 아파트 자치회, 노인정, 인터넷 게시판 모두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국회에서 항상 난투극이 일어난다고 비난하는 국민들 역시 모두 각자의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 난투극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회 전체적으로 깊숙이 남아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계속에서 그 상흔을 자극하여 벌려놓는 지금의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이 먼저 타개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방법이 어떻게 타개될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남북한의 분단 및 정전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가치를 내면화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악의 경우, 민주주의 가치 내면화는 둘째치고 지금보다 더욱 극단적인 파시스트 국가가 들어서지만 않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사실 파시즘에 경도된 사회를 제외하면, 이처럼 관용이 없는 사회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주정이나 귀족 공화정 모두 관용은 필수적인 미덕이었고, 심지어 야만적이라고 불리는 전제정에서조차 관용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니까요.


  야밤에 친구와 숯불구이치킨 한 마리 뜯고 스타리그 본 뒤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이제 자야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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