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노을빛으로 물드는 언덕 (あかね色に染まる坂)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해당 작품을 아직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あかね色に染まる


1. 전형적인 줄거리 및 진행

  '노을빛으로 물드는 언덕'이라는 이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꽤 시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참신함은 부족한, 상투적인 표현을 이용한 이름이기도 하지요. 사실 애니메이션 또는 관련 게임을 꽤 해 보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이름이 주로 어떠한 형태의 작품에서 쓰이는지 바로 감이 오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넵, 연애물입니다. 이건 연애를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주로 쓰이는 전형적인 제목 짓기 방식이지요.

  이 작품은 그러한 연애물 중에서도 아주 '전형적'인 연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생부터가 그렇지요. 원작은 동명의 18금 에로게이고, 그 인기에 힘입어 PS판 및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드라마 CD 등으로 발매된, 미디어 믹스의 일반적인 흐름을 타고 나온 작품이니까요. (위키백과 및 겟츄 참조) 줄거리도 전형적입니다. 남주인공 및 주위의 여러 여주인공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몇 가지 사건들을 거쳐 여자친구 후보(?)들이 압축되지요.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 선 남주인공의 고뇌, 최종적인 선택과 결말 등…… 뭐 무난하고 전형적입니다.

  뭐 이쯤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어느 정도 느끼셨겠지만, 저는 이 작품에 대해 그다지 좋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사실 이 무난하고 전형적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난하고 전형적'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가장 범용성이 있고 잘 팔리는'이라는 말이 되니까요. 가능한 수준 내에서 해당 상품의 소비계층을 최대한 확대시켜, 적절한 수준의 만족을 제공하여 준다는 말도 되겠네요. 저 역시 엄청나게 특이한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그런 작품을 크게 싫어라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전형적인 틀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내적 수준이 기준에 미달한다면 이건 꽤 문제가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신함'도 없는 작품이 그나마 '무난함'마저 없다면…… 음 네 차마 더 말은 못 하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2. 개성'만' 돋보이는 등장인물들

  물론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정말로 매력적입니다. 가사만능에 자상하고 배려심 많고 스타일도 좋은 피가 섞이지 않은 듯한 (…) 여동생 나가세 미나토, 새침데기 츤데레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성격 딱 부러지는 부잣집 아가씨인 카타기리 유히 (참고로 유히의 성우분은 요새 들어 완전 츤데레 전문 성우 -_-;;;가 되어버린 쿠기미야 리에(釘宮理恵) 씨입니다) 및 기타 등등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나머지 캐릭터들도 뭐 명랑 쾌활한 소꿉친구, 아이돌 학생회장님, 정신없는 부잣집 따님, 신비주의 후배 아가씨, 내성적인 학생회 임원 등등 나름 독특한 개성이 있고요.

  뭐, 사실 어디서 다 한 번씩 본 듯한 느낌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 확실한 진부한 캐릭터 설정들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줄거리를 비판한 것과는 달리, 등장인물의 성격은 나름 잘 연출하고 있어요. 매번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참신한가 못지않게 얼마나 어색하지 않은가도 매우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러한 면에서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굉장히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최종 쟁탈전 (……)에 참가하는 위에 쓴 저 두 명의 여주인공을 빼면, 나머지는 완벽히 일관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딱히 그 특징을 헷갈릴 요소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 극과 극을 달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하나의 작품 안에 몽땅 담으려고 해서인지 작품 진행은 막장엉망진창입니다. 일단 정신이 없어요. 캐릭터들 매력적인 건 충분히 알겠는데, 왜 이렇게 정신없이 등장하는 건지 원 ㅠㅠ 게다가 이 작품은 최종화 즈음 부분의 양 여주인공의 갈등부가 꽤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이 짧습니다. 총 12화의 1쿨 작품인데, 이렇게 결론부가 길면 상대적으로 다른 등장인물을 다룰 기회는 적어지죠. 물론 이러한 구성을 선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네요. 게다가 절제의 미덕도 없이 각 캐릭터가 전부 나름 빛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작 게임은 이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상투적인 형태를 지니고서도 인기몰이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이 고전적인 기본에 충실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아마 게임에서는 몇 개의 캐릭터에게 각각 나누어져 있고, 동시에 일어났다고 해도 포인트가 다른 이야기들이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한 번에 합쳐져 나타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듭니다.


3. 의의

  웬만해서 큰 비난을 하지 않는 제가 이 작품에 대해서만이처럼 살짝 비난의 수위를 높인 건, 아직도 작화를 보고 예쁘다고 낚여서 보고 후회하는 제 자신이 슬퍼서일 수도 있습니다 -_-;;; 중간중간 작붕이 꽤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 작화 자체는 게임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잘 옮겨다 놓았거든요. 음…… 그림은 꽤 예뻐요 확실히. 무난하게 잘 팔릴 작화입니다.

  계속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긴 하지만, 고전적 연애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초현실적 설정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_-;; 의 정형화된 분위기를 알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꽤 괜찮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전형적인 건 제일 잘 팔리는 거니까요. 사실 이 작품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비슷한 분위기의 파이널 어프로치(Φなる・あぷろーち)를 보는 걸 개인적으로 추천드리기고 싶기는 합니다. 2004년에 나온 작품이기는 하지만 노을빛으로 물드는 언덕보다는 조금 더 짜임새가 튼튼하고, 무엇보다 분량이 절반밖에 안 되거든요. 참 어떻게 비슷한 소재와 형태로 분량이 절반인 작품에 비해 구성과 연출이 떨어지는지…… 음음

  어쨌든, 2008년도 거의 지나가던 그 시점에서 6~7년 전으로 돌아간듯한 형태의 작품이 나온 것만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창 시스터 프린세스가 나름 이슈-_-가 되고 있던 시점에 쏟아져 나오던 고전적 하렘물들의 구성을 완벽히 이어받은 듯한 모습이었으니까요. 이제 막 그쪽 세계(……)에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의외로 꽤 좋은 작품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든지 기초가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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