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인한 가치 충돌 이야기
※ 글이 길기 때문에 먼저 세 줄 요약으로 결론부터 쓰도록 하겠습니다
1.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목적임
2. 채용의 공정성은 이 정책의 고려 대상이 아님
3. 채용의 공정성 가치를 반영한 정책의 수정 또는 새로운 정책 수립이 필요함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 중 하나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입니다. 이 정책이 이슈가 되는 이유를 살펴보기 이전, 먼저 용어의 정리를 위해 비정규직이란 무엇인가부터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의하는 비정규직은 크게 기간제근로자, 단시간근로자, 파견근로자로 나뉘며, 각각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단시간근로자
- (정의) 같은 사업장 내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일주일 근무시간(최대 40시간) 보다 짧게 근무하는 근로자, 같은 업무의 통상근로자가 없는 경우 단시간근로자로 보지 않음
- (도입시점) 1997년
*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1997년에 폐지 후 새로 제정한 법으로, 여기에서는 폐지된 근로기준법을 의미
- (도입사유) 경영계의 노동 유연성 확대 요구를 정부 및 여당이 수용, 신한국당의 1996년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인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며 도입
- (관련규정) 1996년 12월 31일 일부개정된 근로기준법 제19조의3(단시간근로자의 정의) 이 법에서 “단시간근로자”라 함은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당해 사업장의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
② 파견근로자
- (정의)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며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
- (도입시점) 1998년
- (도입사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과정에서 IMF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 제한 완화 및 파견근로제 도입을 합의
- (관련규정) 1998년 2월 20일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2조(정의) 5. "파견근로자"라 함은 파견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로서 근로자파견의 대상이 되는 자를 말한다.
③ 기간제근로자
- (정의)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 (도입시점) 2007년
- (도입사유) 기간제근로자의 고용 불안정 방지 및 근로자 간 근로조건 격차 해소를 위해 사용기간(최장 2년) 및 2년 초과 기간제근로자 사용이 가능한 예외적 사유 정의
- (관련규정) 2006년 12월 21일 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 1. "기간제근로자"라 함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이하 "기간제 근로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한 근로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07.20)"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데, 그 정책의 주요 골자는 가이드라인 내 다음의 그림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은 기간제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와 용역근로자입니다. 기간제근로자 및 파견근로자는 위에 정의되어 있고, 용역근로자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해당 업체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공공기관으로부터 수탁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를 의미합니다.
상기의 비정규직 중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고 전환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전환 대상자에 포함됩니다. 기존 기간제법의 예외 사유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전환 대상자를 설정하는데, 해당 내용은 본 글의 주요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실 경우 고용노동부의 정책자료실을 참조하거나 아래 첨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하시면 될 듯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07.20.)
그러면 이제 이 정책이 왜 추진되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 첨부한 가이드라인의 1~2페이지에 해당 정책의 추진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추진 배경의 핵심 문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고용의 유연성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규모와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고,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 상황을 그냥 둘 수는 없음
즉 근로자의 고용안전과 처우개선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주요 추진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정책이 수립 및 시행되는 경우 정책 내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전략 및 방법은 결국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이 정책에서 파급되는 수많은 제도 및 효과가 모두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전과 처우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이 정책으로 인해 최근의 불거지고 있는 이슈인 채용 과정의 불공정함, 신규 채용규모 감축 방지 등은 정책 내에서 고려하지 않는 사항들입니다. 오히려 해당 이슈들은 이 정책의 추진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직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시험을 통해 전환자를 제한할 경우, 기존 비정규직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대상자 중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합격하지 못한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고용 형태를 유지한 채 비정규직 직원의 계약이 만료되면 정규직 공채를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 한 비정규직 직원에게는 고용안전이 더욱 불안해진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원이 수행하고 경력을 쌓던 직종이 전부 정규직으로 바뀌면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줄어든 고용 시장에 일자리를 찾으러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전 확보와 정규직 채용의 공정성 확보라는 두 가치는 이 정책의 수혜자에게는 충돌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합니다. 안정된 정규직 자리라는 제한적인 자원을 두고 사회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및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정확하게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인식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에는 주요 공약 중 하나로 '4. 일자리가 마련된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세 항목이 있는데, 모두 이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 연관된 항목들입니다. 이 항목들에서는 정규직 일자리 확대 및 비정규직 일자리 축소, 임금격차 해소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의 내용 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공약집을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알 수 있지만, 공약집 그 어디에도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공약 내 채용 절차와 관련된 내용은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채용의 공정성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 나아가 고용의 안정성 확보만큼 문재인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이번 정권이 채용의 공정성이라는 이슈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라는 인지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민정당계 정당에 대항하는 민주계 세력이 모인 정당입니다. '민주계'는 상당히 넓고 다양한 범위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 포괄정당(Catchall Party)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공통으로 합의된 의견의 도출이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통상적인 상황에서 '채용의 공정성 확보'가 기존 합의한 대선 공약과 동등하다 인식하거나, 최소 그 정도 수준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통일된 당론이 정해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이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논의를 하는 당사자들이 서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자신의 주장의 선명성을 흐리게 하고 논거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굳이 파악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의 예측을 강화하여 다른 입장의 예측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이해 당사자들이 밝히고, 상대방 측이 제기하는 이슈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의 처우가 어느 수준인지, 향후 처우의 급격한 증감이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전환으로 인한 정규직 고용 규모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러한 답변이 향후 사실과 다를 경우 어떠한 불이익을 받을지 등에 대한 답변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관계의 명확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부터 모든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단초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해결하여야 할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제도가 생긴 이후 이로 인하여 발생된 사회적 문제가 많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며, 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나가는 주요 길목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놓여 있다는 점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현재의 여당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반영하여 사회 제도 및 인식이 변화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부작용 또는 다른 사회적 가치와의 충돌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번 건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보입니다. 이 건을 정치공학적인 계산으로 의도적 무시를 하며 넘어가는 선택지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사회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되거나 다른 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1990년대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될 당시 신한국당의 일방적인 날치기와 국외의 압력으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었던 현재의 여당이 마찬가지로 지금의 20대와 30대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들의 향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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