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김치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


  2020년 말부터 중국에서 뜬금없는 김치 종주국 논쟁을 시작하였습니다. 2020년 11월 파오차이(泡菜)라는 중국식 절임채소 제조법이 ISO 인증을 받았는데, 환구시보(环球时报)에서 파오차이와 김치를 같은 음식인 것처럼 보도한 이후 갑자기 '한국의 김치는 중국의 고유 음식으로 한국에 전래된 것이며, 한국인들이 중국의 고유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라는 논조의 주장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민간 분야에서는 슬슬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의 여러 가지 온갖 주장과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매 번 양국 간의 갈등 상황에서 그래 왔듯이 직접적인 논평은 하지 않지만, 매우 다양한 경로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김치 홍보 트위터 게시물

  그리고 최근 UN 주재 중국 대사인 장쥔(張軍, Zhang Jun)이 2021년 연초부터 뜬금없는 김치 홍보 트위터 게시물을 작성하여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게시물이 사실상 최근 논쟁이 되는 김치의 중국 기원설을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UN주재 중국대사 트위터

 왜냐하면 저 인물은 중국의 고위 관료이자 외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외교적 수사'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외교가에서는 하고자 하는 말을 모호하고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하고 있는데, 저 게시물도 훌륭한 예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연초부터 미국에 있는 사람이 아무런 전후 맥락 없이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추천하는데, 그 음식이 현지(미국)의 음식이 아니라면 당연히 자국의 음식일 것입니다. 즉 '김치는 중국 음식이다'라는 주장을 완곡하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김치가 왜 중국 음식이냐'라고 직접적으로 항의하면 '나는 그저 연초를 맞아 좋은 음식을 추천한 것뿐이다'라는 회피처를 만들어 두었으므로 '외교적 수사'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저 정도 직급의 외교관이 본국의 입장 또는 속마음과 다른 게시물을 당당하게 게시하기도 힘들고, 하물며 중국의 외교관이라면 더더욱 그러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여도 마찬가지 결론이 도출됩니다.

  중국인들이 이루었던 문명의 찬란한 업적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볼 때마다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김치 논란 이전부터 중국은 세계 각 국의 많은 전통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하였으므로 결론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도둑질해 간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럽이나 미국 등의 서구권에서 중국 드라마에서 양복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문화를 도둑질하여 쓰지 말라고 하지 않고,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를 보고 전 세계를 사로잡은 위대한 미국 문화상품이라고 크게 자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매우 대조적인 상황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서구권은 그러한 자잘한 사항을 빼더라도 자신들의 문화에 자신감이 있고, 더욱 뛰어난 문명의 부산물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수준이 있지 굳이 그 정도까지 자랑해야 하나?'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 논리대로 해석할 경우 중국이 저러는 것이 이해되기는 합니다. 중국은 현재 딱히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이 마땅히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영토나 인구는 많았고, 최근에는 국가의 경제규모도 세계구급으로 커졌는데 그 체급에 걸맞은 문화적 역량(소프트 파워)이 별로 없으니까요. 일단 국가의 경제력과 개인의 경제력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부분을 논외로 하여도 중국의 문화상품은 정말 전멸 상황입니다. 예전 도자기, 차, 비단 등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 유목민족이 쳐들어와도 몇 세기만에 중국 문화에 물들어버려 특유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던 중국 문화의 위대함은 신기루와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이 문화적 역량을 스스로 키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오던 유구한 전통문화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를 거치며 스스로의 손으로 거진 파괴하여 버렸습니다. 심지어 유물이나 유적과 같은 물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철학·종교·사상 및 음식·의복·예술 등 소프트 파워의 기반이 되는 인력 및 가치관 등까지 꼼꼼하게 파괴하여 버렸기 때문에 예전 수준으로의 복구가 단시간에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국가 권력의 강력한 통제 덕분에 내부에서 새로이 문화적 역량을 성장시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비판적 사고는 둘째치고 간단한 풍자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다채로운 생각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사고가 쉽게 표출되기 어려운 경직된 사회이지만, 중국의 경우와 비교하기에는 우리나라에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자유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즉, 현재 중국인들의 상황은 매우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우월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문화 방면에서도 그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 한 상황이니까요. 즉, '중국이 영토가 넓고 사람이 많으며 총 GDP가 높은 나라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긍정하는데 '중국인이 좋은가' 또는 '중국인이 되고 싶은가', '중국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대답이 훨씬 높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사회의 경직성 때문에 스스로의 역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다른 나라의 전통문화 중 약간이라도 중국과 연관이 있다 싶으면 모두 원래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여 '남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은 원래 중국의 것이다'라는 위안을 얻거나 '그 문화를 가져와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 부족한 소프트 파워를 보충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해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방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유노 클럽

  한국에서도 지난 몇십 년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경제 규모도 어느 정도 커 졌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행사도 치렀는데 국가 인지도가 올라가지 않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대표적으로 비꼬는 말이 '두 유 노 클럽'입니다. 외국인들만 보면 김치를 필두로 한 한국의 전통문화상품을 아는지 물어보는 행위(Do you know kimchi?)를 비꼬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인데, 조금 생각해 보면 이 행위에는 '급격한 국력 상승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낮은 인지도에 대한 부끄러움'이 복합적으로 섞여 나타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의 성과물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마음이 '두 유 노'로 표출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당시 우리나라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모두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소프트 파워의 성장이 더디게 표출되는 과정에서 부각된 일이므로 현재 중국의 모습과 일견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더딘 소프트 파워의 성장을 외부의 소프트 파워를 약탈행위에 가깝게 끌고 들어오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점이 다르지만요.

  중국은 정말 찬란한 문화를 지녔던 나라입니다. 그 문화를 스스로의 손으로 다 파괴하고, 딱히 재건을 할 생각도 없으면서 화려한 시절의 영향력만 바라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가 예전에 중국 공자 관련 사적지에 방문하였을 때에도 느낀 감정이지만, 전통 있는 중화의 혈연적 후손들이 조금 더 군자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그 날이 올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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