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의 경제와 인플레이션


   온라인 게임은 현대 경제 체제(자본주의)에 익숙한 사람들(개발자 및 사용자)이 온라인에 모여서 숫자로 구성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즐기는 놀이 활동입니다. 따라서 화폐 경제의 논리가 게임 내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개발자의 설계에 따라 사용자(유저)가 게임 내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되며, 이 활동으로 인해 게임 내의 재화(아이템) 공급이 증가하여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됩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나 개발자는 아니지만, 다년간 사용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느낀 바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지칭하는 '온라인 게임'은 흔히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로 불리는 다중 사용자 역할 놀이 게임을 지칭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캐주얼, 슈팅 등 다른 장르의 온라인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게임 경제 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이 글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게임(듀랑고) 내의 아이템 및 화폐창

1-1. 인플레이션의 발생

  초기(1990년~2000년대 초반)의 온라인 게임 내의 경제 체계에서 인플레이션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사용자의 활동 때문에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 및 개발자는 주로 월별 정액제 요금 부과를 통해 운영 수익을 창출하였지, 게임 내의 재화 공급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들은 게임 내의 활동(직접 재화 획득 또는 획득한 아이템 판매)을 통해 게임 내의 화폐를 얻고, 이 화폐를 게임 내 활동에 필요한 다른 아이템으로 바꾸는 활동을 계속하게 됩니다. 만약 사용자와 NPC 간의 거래만이 일어난다면 인플레이션의 발생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NPC를 통해 더 높은 가격의 아이템을 공급하여 사용자의 구매를 촉진시키거나, 사용자가 게임 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소모성 비용(회복, 보조 및 강화 아이템 또는 아이템 수리 및 유지 비용)을 부과하면 과다하게 발생한 화폐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게임의 콘텐츠가 이 같은 경제 구조에서도 충분히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게임 내의 인플레이션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게임들은 사용자가 많아지고, 서비스 시간이 누적되면 점점 다른 양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선 NPC와의 단순 거래로는 얻을 수 없고, 사용자 간의 도구(아이템) 교환이나 게임 내 활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온라인게임은 사용자의 연속적이고 반영구적인 활동(플레이)을 가정하고 서비스되는 게임으로 패키지 게임과 같이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 및 개발자는 게임 사용자들을 계속 붙잡아야만 합니다. 끝이 없는 이야기이므로 게임의 줄거리(시나리오)만으로 사용자를 붙잡을 수 없으므로 개발자는 필연적으로 사용자가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다른 유인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유인책으로 제일 흔하게 제시되는 것이 캐릭터의 성장입니다.

  캐릭터의 성장은 캐릭터의 레벨에 따른 각종 수치의 강화와,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의 변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게임 내의 화폐입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이렇게 강화된 캐릭터를 이용하여 더욱 빠른 캐릭터의 성장, PvP, 더욱 많은 자원 확보 등의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더욱 많은 자원 확보 행위로 인하여 게임 내의 화폐 공급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됩니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게임 내에서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10,000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하였을 때 기존까지는 사냥을 위해 공격을 다섯 번 하였다면, 강해진 캐릭터는 네 번의 공격만으로 사냥을 할 수 있으므로 더욱 빠르게 게임 내의 화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를 화폐수량설로 설명하면 MV=PY에서 화폐공급(M)이 증가하여 인플레이션(P, 물가)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화폐유통속도(V)의 경우 온라인 게임 내에서 거래 방식의 변경 업데이트 또는 대규모의 사용자 유입/감소가 있지 않는 이상 크게 변화할 일이 없습니다. 통상적인 게임 내의 화폐 경제 시스템에는 이자율이 적용되는 경우도 없으므로 V 값이 변할 일은 더욱 없고요. 다만 생산량(Y)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사용자들이 제작 또는 획득하는 아이템의 수량이 많고, 그 아이템들이 꾸준하게 소비된다면 Y 값은 증가하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생산량을 증가시켜 물가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사용자들의 획득/제작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거래시키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소모하는 물품이 많아야 하는데, 이는 ①소모성 물품이 많이 사용되도록 게임 내의 구조를 설정하거나 ②계속하여 새로운 아이템을 등장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자(1번)의 경우 소모성 물품이 지나치게 많으면 사용자들이 게임 이용에 불편을 느낄 가능성이 높고, 후자(2번)의 경우 게임 시스템의 균형을 고려하여 계속 업데이트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용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고, 다른 하나는 개발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으로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사용자의 화폐 획득량을 줄일 수도 없습니다. 캐릭터의 성장에 따른 더욱 효율적인 화폐의 획득은 사용자가 게임을 지속하게 하기 위한 강력한 보상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는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의 발생을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1-2. 인플레이션의 진행

  게임 서비스가 지속되고, 인플레이션이 계속 발생하게 되면 이 압력은 NPC와의 거래로는 얻을 수 없는 아이템 또는 행위에 집중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NPC와의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또는 행위는 가격이 정해져 있고, 이 가격은 기존의 사용자보다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되는 신규 사용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신규 사용자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10,000을 얻고, 한 시간 동안 평균 10마리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였을 때, 이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아이템의 가격을 100,000 이상으로 책정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신규 사용자의 유입 및 정착을 위해서는 NPC와의 거래 가능 물품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정 기간 게임을 하여 어느 정도 캐릭터의 레벨 및 게임 내의 자본이 축적된 사용자 간의 거래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해지고, 해당하는 아이템의 평균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상승 속도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빨리 화폐를 얻을 수 있는가(V)에 따라 다릅니다. 즉 강해진 캐릭터로 더욱 빠르게 화폐를 얻을 수 있게 된 사용자가 얻기를 원하는 아이템에 더욱 많은 화폐를 지불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이템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되는 업데이트로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기존의 고가 아이템에 몰리던 수요가 새 아이템으로 분산되어 기존 아이템의 가격은 하락하게 됩니다. 기존 아이템의 가치가 많이 하락하는 경우 거의 떨이(NPC 상점 판매가보다 조금 높은 수준)로 아이템이 거래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최고급 단계의 아이템은 점점 금액이 올라가게 됩니다. 게임 내의 화폐 수량이 증가하고,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기존의 사용자들은 아이템 가격의 상승을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강한 캐릭터(효율적인 화폐 생산 수단)나 이미 확보한 많은 화폐, 또는 두 가지가 모두 다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신규 사용자 또는 게임 이용 시간이 적은 사용자들입니다. 이들에게 고가의 아이템은 점점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한 시간에 10만의 게임 화폐를 얻을 수 있는데, 최고 등급의 아이템이 100만인 경우라면 획득을 위한 의욕을 보일 수 있으나, 10억인 경우는 너무 진입장벽이 높아 획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물론 기존의 사용자들은 신규 사용자들이 차근차근 성장을 할 경우 그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력을 본인들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도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대다수의 신규 사용자 또는 게임 이용이 적은 사용자들이 그 정보를 파악하고 게임에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그냥 게임 진행을 포기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그 게임은 신규 사용자(뉴비)또는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라이트 유저)의 수가 줄어들어 소수의 사용자만 남게 되는, 일명 '고인 물 게임'이 됩니다.

  그렇다고 최고 등급 아이템의 가격을 낮출 수도 없습니다. 이 경우 게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핵심 사용자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수명(서비스 기간)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 중의 하나가 전체 사용자의 숫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게임 수익의 대부분은 핵심 사용자들에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특히 기존의 정액제 게임(B2P)이 아닌 최근의 부분유료화 모델(F2P)은 핵심 사용자가 게임 운영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는 게임 내의 인플레이션 상승 추세를 계속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인플레이션의 결말

  결국 인플레이션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게임 내 사용자 간의 거래는 소수의 핵심 사용자와, 다수의 가벼운 사용자로 이원화됩니다. 양자 간에는 엄청난 진입장벽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게임 업데이트를 통한 아이템 가치의 변동 상황 또는 기존 핵심 사용자에게 아이템을 인수받는 상황(양도 또는 게임 외 시스템을 이용한 현금 구매) 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규 사용자의 유입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기존 사용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핵심 사용자 역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소하게 되므로 게임 운영에 따른 수익이 크게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2. 해결 방안

  게임을 하나 개발하여 서비스하는 과정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 인력이 소모됩니다. 당연히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는  그 게임을 통해 가능한 한 오랜 기간 동안 수익을 얻고 싶습니다. 그래서 게임 서비스 수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방법들은 아래 기재한 네 가지 방법들입니다.


2-1. 게임 몰입도 향상

  이 방법은 인플레이션 자체를 해결하기보다, 그 이상의 다른 유인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방법입니다. 게임 내의 화폐 경제가 붕괴 수준이라도, 핵심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게임에 몰입하여 즐길 수만 있다면 이는 의외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 '고인 물 유저를 확실히 붙들기' 전략입니다. 이 경우 대다수인 가볍게 게임을 이용하는 사용자 및 신규 사용자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핵심 사용자만을 위한 업데이트를 지속하면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가끔 핵심 사용자가 이탈하기는 하지만, 역시 가끔 들어오는 신규 사용자가 그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습니다. 해당 신규 사용자가 자체적으로 큰 비용을 들여 게임에 유입하거나, 기존의 핵심 사용자들의 물심양면(?) 지원을 통해 해당 사용자를 핵심 사용자까지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게임이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입니다.

  이 방법은 상당히 이상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몰입도를 향상' 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결정적인 단점입니다. 


2-2. 대규모 패치를 통한 아이템 가치 조정

  게임 내의 신규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의 아이템 가치를 급격하게 하락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즉 기존까지 고가으로 취급받던 고성능의 장비를 한 순간에 평범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으로 만드는 법입니다. 업데이트 이전 사용자가 힘들게 제작 및 획득한 장비의 성능을 업데이트 이후에는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장비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게 되면, 사용자들은 다시 새로운 고성능 장비를 얻기 위해 아이템을 소비하게 되므로 인플레이션이 자연적으로 억제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사용자들이 그러한 시스템 운영에 동의를 해 주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아이템의 가치를 한 순간에 폭락시킨다는 방침에 많은 사용자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 상위 화폐 도입

  이 방법은 게임 내에서 사용자들이 생산하는 재화를 재화로 인식하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게임 내의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는 재화는 현금을 통해 구매(또는 이벤트로 소량 획득)할 수 있는 상위 화폐만으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사용자들이 생산하여 획득한 화폐는 단순한 보조 수단 이상의 가치를 주지 않도록 게임 내의 경제를 이원화시킵니다. 이 경우 사용자가 아무리 많이 활동해도 게임 내의 핵심 경제 시스템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활동량이 인플레이션과 무관하게 작용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최근 서비스하는 대다수의 부분유료화 게임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게임 내 사용자의 거래 자유도를 크게 침해한다는 점과, 이러한 시스템에 사용자들이 동의를 하고 게임에 진입하여 주어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만 최근 인기를 얻는 게임들을 보면 큰 단점이 아닌 것 같네요).


2-4. 아이템 거래 제한

  이 방법은 사용자 간 거래할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 자체를 제한하여 버리는 방법입니다. 주로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방법과 병행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화폐만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화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용자 간 아이템을 양도할 수 없으므로 그 아이템을 얻고 싶은 사용자는 본인의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여 게임을 진행하게 되고, 이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의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사용자가 그 시스템을 수용할 정도로 게임의 몰입도가 확보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2-3과 거의 동일한 단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결론

  게임 내 화폐 경제의 인플레이션은 게임 운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통제하기도 힘들고,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가 사용자들의 심한 반발과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그러다 보니 많은 게임사들이 현금으로만 구매 가능한 상위 화폐를 중심으로 게임 경제 시스템을 구성하거나, 아이템 거래 제한(귀속 등) 방법을 애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방법들이 회사가 게임을 유지하기에도 편하고, 지속적인 수익도 보장되므로 매력적인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최근의 게임 추세가 점점 이러한 방향으로 치우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합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게임을 즐기게 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인 게임 내의 거래를 통한 즐거움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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