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외교적 수사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초의 예상과 달리 점점 장기화되어, 한 달이 지난 3월 29일 현재까지도 사태가 계속하여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쟁의 특징 중 하나로 엄청난 정보의 홍수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0년 전 걸프 전쟁 때에는 처음으로 전쟁이 일어난 지역 외의 사람들에게 대중매체가 실시간 영상으로 관련 정보를 보도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면, 이번 전쟁은 NATO의 정찰자산과 우크라이나 내 개인들에게 보급된 스마트폰 및 통신망 덕분에 각 지역의 전황을 상당히 빠르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네요.
(사진출처 : RUSSIAN OFFENSIVE CAMPAIGN ASSESSMENT, MARCH 28, ISW)
엄청난 정보가 새로운 채널을 통하여 범람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통적'인 채널에서 제공하는 정보 역시 중요합니다. 외교 채널을 통한 발표와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전쟁 당사국 외교관의 발언은 다른 어떤 경로보다 해당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경우 딱히 제공하고 있는 정보가 없으므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심지어 한국어 콘텐츠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한국어 콘텐츠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러시아의 공식적인 입장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온도 차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와의 교류가 더욱 활발하였기에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게시물 중 "2월 28일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의 기자회견 모두발언"은 이번 전쟁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을 아주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은 흔히 '외교적 수사'로 표현되는 특유의 모호한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 이 기자회견에서는 상당히 직설적인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에 대한 입장 표명이므로 자신의 변호 및 입장 표명이(나 말고 쟤가 나쁜 놈이에요가) 분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대사의 기자회견 모두발언 뒤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시 외교적 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 당일(2월 28일) 발표된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동참에는 상당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나다 XX들아" 형식을 이용하여 이 파트를 다시 창작하여 볼까 합니다. 일종의 실화 배경 소설과 비슷한 종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한국 정부, 대러시아 제재 동참
한국 정부가 대러시아 국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 형 기분 안 좋다.
러시아와 한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교 한 지 30년 이상 지났는데 그동안 양자 관계가 역동적으로, 또한 긍정적으로만 발전해 왔습니다.
→ 우리 그동안 좋았었잖아.
2014년 크림 사태 후에 한국 정부는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대러시아 국제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우리는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이번에는 왜 XX이냐.
한국의 국익을 생각해 보면 러시아에 우호적인 한국이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이유를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 사실 니가 왜 그러는지 잘 안다.
대러시아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지금 받고 있는 강력한 외부 영향입니다.
→ 미국이지?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여기에서 냉정하게 인식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한국이 이러한 압력에 굴복해서 제재에 동참했다면 우리 양자관계가 발전하는 추세가 바뀔 것이라는 점입니다. 거듭 강조드리지만 30년 동안 러한 관계는 긍정적으로만 발전해 왔습니다. 양자 협력이 강화하는 그 추세가 이제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 앞으로 재미없을 줄 알아라.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신북방정책 덕분에 양자관계가 보다 더욱더 잘 발전해 왔던 터라 요즘 벌어지고 있는 상태가 더욱더 유감스럽습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하나 또 점이 있습니다. 세 국가가 참여하는 남북러 경제협력 프로젝트입니다. 이 3각 경제협력 사업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가 참여하는 가스관, 철도, 전력망 등의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던 프로젝트입니다.
→ 형 좋은 거 많다. 뭔지 모를까 봐 가스관, 철도, 전력망이라고 친절하게 이야기도 해 준다.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제재는 남북러 사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명백합니다. 남북러 협력 프로젝트는 사실 핵 문제 해결,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안보, 번영 확립 등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한번 더 이야기한다. "북한"
이를 생각하면 한국이 정말 이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듭니다.
→ 그러다 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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