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오역에 대한 이야기
자국어 또는 공용어로 만들어지지 않은 외국의 글 또는 매체를 해당 외국어를 모르는 다수의 청자(독자, 시청자 등)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수적입니다. 번역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 아니라, 한 문화권에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문화를 다른 문화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번역은 두 언어에 대한 이해부터, 양 측 문화권 모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작품에 대한 이해, 번역가의 창의력 등이 반드시 필요한 고도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밥 먹었어요?"라는 한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경우에도 다양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됩니다. 이걸 문장 내의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Did you eat rice?"가 됩니다.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이 밥이라는 음식을 (최근에) 먹었는지를 물어보는 뜻의 영어 문장으로 아주 잘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번역에서도 "밥"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부터 가 문제입니다. 먼저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먹었나가 궁금한 것이 맞다면, 말을 한 사람이 문장 내의 "밥"이라는 단어를 "쌀로 만든 음식"의 뜻으로 썼는지, "끼니로 먹는 음식물"의 의미로 썼는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고 '밥, 떡, 빵 등 끼니로 활용할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무엇을 먹었는지를 확인하고자 물어본 것이라면 "Did you eat rice?"가 맞겠지만, 점심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점심을 먹었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저 말을 한 것이라면 "Did you have lunch?"가 더욱 정확한 번역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한국어 화자 대부분이 저 문장을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너에게 특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잘 지냈니?"의 뜻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별일 없지?"와 같은 의미로 취급되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문장 그대로 해석한 위의 뜻보다 이 뜻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경우 "Is everything all right?"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지만…… 이게 또 어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냥 인사말로 건넸을 경우라면 "Hey.", "Hello." 또는 "How are you?"가 더 적합할 것이며, "What's up?"이나 "What's happening?"도 무난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샜지만, 번역이 이와 같이 미묘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보니 번역을 잘못하는 오역 역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작품인 "The Great Gatsby"는 작품명을 "위대한 개츠비"로 번역한 것이 맞는가부터 논란이 시작되어, 한국어 번역과 관련한 온갖 논란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또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Dolphinfish"는 원래 만새기라는 고기를 가리키는데, 흔히 돌고래 고기로 자주 오역되곤 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은 아예 국어사전에 "인생은 백 년을 넘기기 어려우나 한번 남긴 예술은 영구히 그 가치를 빛낸다는 말.(고려대 한국어대사전)"로 의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저서인 "격언(Aphorismi)"의 첫 문장으로, 그리스어로는 Ὁ βίος βραχύ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ή, 라틴어로는 Vīta brevis, ars longa, 영어로는 Life is short, art is long으로 씁니다(원문 출처 : 위키피디아). 여기에서 art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a superior skill that you can learn by study and practice and observation, DAUM 영영사전 art Ⅲ항)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해당 문구는 예술의 영속성을 찬미하는 뜻이 아니라 "기술 습득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기술을 활용하는 시간(인생)은 짧다"의 뜻으로 쓴 구절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오역은 매우 자주 일어나고, 전 세계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오래 된 이야기이라 판본이 많아졌거나, 구두로 전해져 온 이야기일수록 이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원래 이런 뜻이 맞는지 더욱 의견이 분분해지게 됩니다. 오역보다는 오기에 해당될 수도 있는 사례라 약간 애매하지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역시 고질적인 논란이 일어나는 항목 중 하나입니다. 원래 프랑스어로 가죽(vair) 구두인 것을 유리(verre) 구두로 잘못 기재하여 오역이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신데렐라가 유럽 지역의 민담을 정리하여 소설로 출판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사례는 반론도 많고, 구전 설화 → 프랑스판 동화 → 영어판 동화로 옮겨지는 과정 중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다른 것으로 보아 그다지 신빙성이 높아 보이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성경 역시 오래된 이야기인 데다가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다 보니 항상 오역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신약의 주요 배경인 이스라엘 지방은 당시 유대인 고유문화에 이집트 문화와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데다가 새롭게 로마(그리스) 문화의 영향까지 강하게 받던 혼돈의 도가니탕 그 자체인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해석 및 번역을 쓰여 있는 문자 그대로만 할 경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허다합니다. 예로 마태복음 19장 24절의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문구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큰 낙타가 바늘귀(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사실상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구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시되는 첫 번째 가설이 아람어(Aramaic) 본 성경을 라틴어 등으로 번역할 때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잘못 번역하였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헬라어(Koine Greek) 본 성경의 밧줄(kamilos)을 낙타(kamelos)로 잘못 번역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낙타와 바늘귀 비유가 등장하는 성경이 신약임을 감안하면, 아람어보다 헬라어 오역 쪽이 보다 자연스럽게(?) 발생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는 합니다. 여하튼 이 오역이 맞다면, 문장의 의미가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로 바뀌어 보다 자연스러운 비유를 사용한 문장으로 해석하여 볼 수 있습니다. 낙타나 밧줄이나 바늘귀에 통과시키기에는 둘 다 불가능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줄과 구멍이라는 조합이 낙타와 구멍이라는 뜬금없는 조합보다는 더 납득이 가기 때문입니다.
이 가설은 꽤 그럴 듯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에도 동일한 비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쿠란 7장(sūrat l-aʿrāf) 40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오만하고 거만하는 자 그들에게는 하늘에의 문이 열리지 아니하며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죄지은 자들에 대한 대가라."라는 구절*(원문 출처 : quran-for-all.com)이 있습니다. 이슬람이 신약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신약에서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운 오역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여 썼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비슷한 글자(또는 발음)를 잘못 보고 오역하는 실수가 다른 시기 두 문화권에서 똑같이 일어났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고요. 여기에서 ① 오역으로 인한 "낙타와 바늘귀" 비유가 이미 이슬람교 발흥 당대에 이미 너무 유명한 비유가 되었거나(위의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의 상황과 같이) ② 애초에 오역인지 모르고 계속 관용어구처럼 써 왔다거나 ③ 오역 여부는 알았을 수도 있지만, 낙타가 나오니까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그 비유 쪽이 더 자연스러워서 그냥 사용했다거나 등의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뭐, 결론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모두 근거 없는 추측의 영역입니다.
* إِنَّ الَّذِينَ كَذَّبُوا بِآيَاتِنَا وَاسْتَكْبَرُوا عَنْهَا لَا تُفَتَّحُ لَهُمْ أَبْوَابُ السَّمَاءِ وَلَا يَدْخُلُونَ الْجَنَّةَ حَتَّىٰ يَلِجَ الْجَمَلُ فِي سَمِّ الْخِيَاطِ وَكَذَٰلِكَ نَجْزِي الْمُجْرِمِينَ
두 번째 가설은 낙타가 아니라 "바늘귀"쪽이 오역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는 바늘귀가 "바늘의 구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레반트 지역에서 "정식 성문 옆에 달려 있는 조그마한 출입문"을 의미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한두 명이 겨우 출입할 정도의 작은 문이므로, 여기에 낙타가 출입하기에는 몹시 어려울 것입니다. 비슷한 뜻인 "쪽문"으로 번역하면 "낙타가 쪽문을 통과하는 것이~"로 문장이 바뀌며, 역시 비유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주장의 단점은 중세에 작성된 성경 주석 외에 다른 증거를 찾기가 힘들고, 고고학적 증거도 마땅히 없다는 점 정도입니다. 넵, 간단히 말해서 증거가 전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오역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의도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지만, 여하튼 저 낙타와 바늘귀가 의도하고 쓴 비유라는 주장입니다. 이 경우 해당 문구는 오역 사례가 아니라, 오역으로 오인한 사례가 되겠네요.
무언가 주절주절 길게 썼지만, 번역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고 오역은 항상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국어 자료를 참고하여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가급적 참고한 외국어 원문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로제타 석이 괜히 역사적인 유물로 칭송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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