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가볼 만한 곳│낙안읍성


  낙안군은 고려 초기부터 조선(대한제국) 말기까지 존재하였던 지명이자 행정구역으로, 1908년 폐군되어 순천군(순천시)과 보성군에 편입되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이 거세 그 보복으로 낙안군이 폐군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꽤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군이 폐군되어 버리고 행정기능이 보성과 순천으로 이관되자, 낙안의 중심지였던 낙안읍은 순식간에 버려진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순천군에서 낙안읍은 단지 변두리의 마을 중 하나일 뿐이었고, 오봉산, 개운상 등의 여러 산으로 순천군의 중심지인 시가지와 분리되어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행정구역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낙안면은 계속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동문 전경
  하지만 그 덕분에 낙안읍성이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각 지역의 중심지가 확장 및 개량되었고, 그 과정에서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던 읍성 및 평지성들은 도시 확장에 방해가 되는 시설물이므로 거의 대부분 허물거나 성문 등의 일부 시설만 남겨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설사 성벽이 보존되어 있더라도, 성 안 마을의 건축물이 근대식 주택으로 바뀌어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요. 하지만 낙안읍성은 당시 근처 지역에서 꽤 큰 도시인 낙안이 갑자기 쇠퇴하며 방치되었기 때문에 규모가 꽤 큰 읍성임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크게 손상되지 않았고, 성내의 주택들 역시 조선시대부터 큰 모습 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복원과 정비를 거쳐 낙안읍성민속마을이 되었고요.

진입로
  낙안읍성민속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입니다. 입구 쪽에는 공원과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적비
  낙안읍성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네요. 뒤쪽으로는 삼일독립운동기념탑이 보입니다.

매표소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살 수 있습니다. 기본 입장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500원이며, 군인 및 지역주민, 단체 등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할인 등이 있습니다.

초가 정자
  입구에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정자입니다.

동문
  낙안읍성에 입장할 때 동문을 이용하게 됩니다. 동문 누각의 이름은 낙풍루(樂豊樓)입니다. 

해자
  입구에는 해자가 있습니다. 깊이는 약 1.5m 내외로 성인 한 명의 키보다 작은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요충지의 성곽이 아니다 보니 그다지 깊은 해자는 아닙니다. 방치된 이후 정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을 수 있겠고요.

낙풍루 뒤편
  성 안에 들어와서 바라본 낙풍루의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복원 및 정비할 때 성문을 따로 만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동문 근처 성벽
  동문에 들어서서 오른쪽, 문을 바라본 상태에서는 왼쪽에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성벽에서 바라본 동문
  성벽을 올라가기 전 바라본 동문의 모습입니다.

남아있는 여장
  성벽에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성 하면 떠올리는 요철(凹凸) 모양의 석재 구조물은 사진 오른쪽 부분까지만 있습니다. 이 구조물은 여장(女墻)이라고 하는데, 적군이 쳐들어올 때 수비군이 저 뒤에 숨어 적의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며 적에게 활 또는 총 등을 이용해 안전하게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물입니다. 아무래도 튀어나온 형태의 시설물이다 보니 성곽이 방치되었을 때 대부분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동문 처마
  낙풍루의 처마는 모로단청으로 보입니다. 성문치고 너무 화려한 단청으로 복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부 풍경 1
  겨우 4~5m 높이의 성벽이지만, 그 위에 올라서면 성 내 마을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남문의 누각이 보입니다.

내부 풍경 2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이 마치 민속촌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이곳은 현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민속촌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의 가옥들이 유지되어 왔다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내부 풍경 3
  멀리 보이는 금전산 자락이 초가지붕과 잘 어울립니다.

동문 근처 성벽길
  성벽을 따라 남문으로 걸어가 보았습니다. 성문 앞에 보이는 매표소가 툭 튀어나온 성벽 안에 쏙 들어가 있는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 구조물은 옹성(甕城)이라고 부르는데, 성문이 직접적으로 공격받는 것을 방지하고 적군이 성벽을 공격할 경우 수비군이 성벽 앞의 적군을 양 쪽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물입니다. 저 옹성 덕분에 적군이 파쇄차와 같은 공성 무기를 이용하여 성벽을 직접 공격할 수 없으니 방어에 상당히 효율적인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벽 상태
  동문과 남문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여장이 복원되어 있지 않으므로 성벽을 따라 걸을 때 낙상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낮아 보여도 5m 높이이므로 떨어지면 다칠 가능성이 큽니다.

남문 가는 길
  성벽 넘어 있는 기와집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입니다.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님이 생전 수집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내부 풍경 4
  마치 조선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보이는 에어컨 실외기, 자동차, 플라스틱 부직포 등은 이곳이 단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줍니다.

내부 풍경 5
  남문 근처에는 성 내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내부 풍경 6
  연못과 다리가 예쁘네요. 전반적으로 흐렸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연잎의 색이 매우 푸르릅니다.

내부 풍경 7
  남문 쪽에서 다시 성 안으로 내려왔습니다.

물레방앗간
  근처에 물레방앗간이 있네요.

물레방아
  물레가 세차게 돌아갑니다. 바퀴의 구동부를 철제 부품으로 보강하여 두었네요.

방아
  당연히 옆에는 물레방아도 있습니다. 돌절구 안에 곡식도 들어있었어요.

옥사 입구
  근처에는 옥사가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도소 또는 구치소와 비슷한 건물입니다. 

함거
  죄인을 이동시킬 때 쓰는 함거가 보이네요.

옥사 전경
  옥사의 모습입니다.

형틀과 칼
  구석에는 죄인을 심문할 때 쓰이는 형틀과 칼 등의 도구와 재현 장면이 있었습니다.

재연 모습
  형틀에 눕혀놓고 곤장을 때리거나, 의자에 앉혀놓고 주리를 틀면 죄인에게 진실(?)이 나오는데, 그 진실을 옆에서 육방(아마 형방이 아닐까 추측합니다)이 받아 적는 모습입니다.

옥사 안
  옥사 안은 죄인을 수감하는 방들이 있었으며, 두꺼운 나무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몹시 추웠을 것 같네요.

성 내 골목길 1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성 내 주택들은 대부분 사람이 실제 거주하고 관리하는 사택(개인 주택)이므로 관광도 좋지만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성 내 골목길 2
  연속된 초가집의 벽이 담장처럼 보입니다. 길이 직선인 게 약간 어색해 보이지만, 대신 깔끔하게 보이네요. 아마 우리나라가 외세의 칩임 없이 천천히 근대화를 하였다면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문 뒤편
  남문 누각의 모습입니다. 이름은 쌍청루(雙淸樓)인데, 성의 정문이다 보니 동문의 낙풍루보다 더욱 화려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도자기 굽기 체험장
  남문 근처에는 도자기 굽기 체험장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가마를 재현해 둔 모습으로 보입니다.

성 내 골목길 3
  마을 안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다 보니, 버드나무 밑의 하얀 천이 갑자기 눈길을 끌었습니다.

빨래터
  가까이 가 보니 빨래터를 재현한 곳이었습니다. 빨래터에는 천과 방망이가 놓여 있어 실제로 빨래 체험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사 재현
  어떤 집 안에는 조선시대에 상을 당했을 때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습니다. 아까 옥사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성 안 곳곳에 조선시대의 모습을 재현해 둔 곳이 많습니다. 벽면의 콘센트와 인물상이 끼고 있는 마스크가 눈에 띄네요.

서문 근처 장승
  어느덧 서문 근처까지 걸어왔습니다. 입구 쪽의 장승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서문 터
  서문은 훼손의 정도가 제일 심했는지 누각이 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이 넓다 보니 성 안에 차량이 출입할 때 이 길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서문 옹성
  서문 역시 옹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입로가 조금 휘어져 있었습니다.

성 내 상점
  각종 가게 역시 초가집 안에 입점해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낙안읍성을 가게 되면 이러한 가게들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더라고요.

자료전시관 입구
  근처에는 자료전시관이 있었습니다만,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자료전시관 건물
  한옥처럼 기와를 얹기는 했지만 콘크리트 건물로 보이네요.

낙민루
  자료전시관 바로 옆에는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누각의 이름은 낙민루(樂民樓)로, 예전에 관사(동헌, 객사 및 내아 등)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사와 일반 거주지역을 구분하던 담장이 있었다는 소리인데, 주변에 담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훼손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낙민루 뒤편
  반대편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누각 밑에 문이 달려 있는 것이 잘 보이네요. 누각 위에 달려 있는 것은 낙민고라는 이름의 북입니다.

동헌 입구
  지방관의 근무처인 동헌의 입구입니다. 평삼문(솟을대문)입니다. 가마가 출입하기 용이하도록 문턱이 없습니다.

동헌 전경
  입구를 지나쳐 들어가면 동헌이 나옵니다. 관청이다 보니 단청 등의 꾸밈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두었다고 합니다.

동헌 현판
  동헌의 이름은 사무당(使無堂)입니다. 발음만 보아서는 사무를 보는 건물이라는 뜻 같지만, 애초에 재판(使)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정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논어 안연편의 문구에서 따 와 지은 이름입니다.

죄인 신문 재현
  하지만 동헌 마당에는 죄인이 끌려와 있네요. "사무"가 모든 사람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저 사람이 나쁜 놈이라 잡아왔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군수와 아전
  인물상들에 씌워 둔 마스크가 인상적입니다. 사또는 화려한 마스크를 쓰고 있네요.

내아 전경
  동헌에서 북서쪽, 바라보았을 때는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내아입니다. 내아는 관리(지방관)들이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낙안 객사
  동헌을 지나쳐 동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낙안객사가 나옵니다. 객사는 해당 지역에 방문하는 관리들이 임시로 머무는 숙소입니다.

홍살문
  객사 앞마당 앞쪽 길에는 홍살문이 서 있습니다. 홍살문은 위엄 있는 장소 앞에 설치되던 문으로 조선시대에는 궁궐, 관청, 왕릉, 향교와 같은 공적 시설과 서원 및 훌륭한 인물(충신, 효자, 열녀 등)의 사택 앞에만 허가를 받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객사 건물

  객사는 높은 분들이 와서 묵을 때 사용되는 건물이라 그런지 동헌과 다르게 화려하게 칠을 해 두었습니다. 아마 조선시대에는 잔디 대신 모래를 깔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보존을 잘했다고 하여도 도시의 과거 모습을 현재까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낙안읍성은 읍성 내부의 시설이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벽 및 관청 같은 건물도 대한제국 말기까지 사용되었었기 때문에 다른 역사유적에 비해 올바른 복원 논란도 다른 사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을까 싶고요.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낙안읍성 안에서 회오리감자와 수제 아이스크림은 안 팔았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일까요.



낙안읍성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https://www.suncheon.go.kr/n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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