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가볼 만한 곳│마이산 탑사, 금당사
마이산은 말(馬)의 귀(耳) 모양 산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가서 보면 두 개의 봉우리(암마이봉, 숫마이봉)가 솟아 있는 모양이 말의 귀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마이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입니다.
마이산만의 독특한 점이라면, 산이 화강암이 아닌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들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노출된 암석 표면이 단단하고 매끄럽게 보이는 것과 달리, 마이산의 암석은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이는 퇴적암을 이루고 있던 진흙, 모래, 자갈 등의 많은 암석들이 장시간 노출되어 풍화가 일어날 때, 원래의 덩어리대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생긴 흔적입니다. 이러한 지형을 타포니(Tafoni, Tafone)라고 부르는데, 마이산은 우리나라에서 타포니 지형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마이산을 오르기 편한 길을 꼽아보자면, 북쪽 생태수변공원 쪽과 남쪽 탑영저수지 쪽의 길을 우선 들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남쪽 길은 오르는 길이 자체는 길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산을 오르기 수월하며, 가는 길에 마이산의 유명 사찰들을 차례대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남쪽 길을 따라 오르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절은 바로 금당사(金塘寺)입니다.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립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재 위치에 금당사가 세워진 시기는 17세기입니다.
금당사의 극락보전입니다. 절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건물을 흔히 대웅전이라고 부르며, 그 건물은 절의 중심이 됩니다. 다만 대웅전이 없는 대신 극락보전이 있는 절들도 있습니다. 두 건물의 역할은 거의 동일하지만, 모시고 있는 부처님에 따라 건물의 이름이 다르게 붙는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점이 그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금당사의 극락보전이 금색 지붕이라는 설명을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어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분명 평범한 기와지붕인데 금색 지붕이라니요. 조금 찾아보니 유담의 등산과 야생화 블로그에서 십 년 전 금당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금색 지붕의 건물이 맞기는 맞았네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 금빛 지붕도 그렇지만, 기둥 부분 단청의 색도 페인트를 칠한 것 같이 지나치게 붉고 선명했었습니다. 게다가 가운데 탑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건물의 현판에는 "대웅보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건물이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는 건물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저 건물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인 금당사목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목불좌상의 부처님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손을 잘 살펴보면 됩니다. 이는 부처님마다 손을 통해 표시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 흔히 수인(手印)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 끝(검지손가락)이 땅을 가리키고 있는 불상이 있다면, 그것은 석가모니를 표현한 불상입니다. 왜냐하면 저 수인을 항마촉지인이라고 부르는데, 그 수인을 맺는 불상은 오직 석가모니의 불상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열을 내며 설명한 것과는 별개로, 참 화려하네요. 산속에서 만나는 화려한 총천연색의 건물과 그림은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단청도, 좌대도, 불화도 모두모두 화려하네요.
아마 금당사를 金堂寺라고도 부르는 것에 꽂혀 고증과 복원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여 볼 뿐입니다. 십 년 전에는 금빛(金) 집(堂)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와도 금빛으로 칠하고, 석등도 금빛으로 칠하고, 저 사진의 비석(금당영지) 위에도 금빛 짐승 조각을 올려두었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예전보다 지금의 모습이 보기에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석 뒤에는 삼성각이 보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이제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잘 가꾸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극락보전 앞의 석탑은 현대에 새로 세운 탑으로 보이며, 팔각 구층 석탑입니다. 월정사의 팔각 구층 석탑과 매우 닮았으며,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송나라 양식의 석탑입니다.
절의 부지 자체는 넓은 편이 아닌데, 담장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중간중간 시설을 사로잡을 탑이나 석등이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그리 좁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나한전 앞의 금빛 석등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 석등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과거 극락보전의 금빛 기와도 평범한 기와에 금빛 페인트칠을 했거나 금색 플라스틱 기와를 사용하여 색을 냈던 것이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생겨납니다.
드디어 탑사(塔寺)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이산의 사찰들 중 인지도 면에서는 단연 최고인 사찰입니다. 탑사 뒤로는 숫마이봉 꼭대기와 암마이봉 일부가 보입니다.
탑사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사찰입니다. 이곳에서 돌탑을 쌓으며 거주하던 이갑룡 처사의 거주지에 불상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렸었는데, 그 규모가 커져 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건물 자체도 기존의 사찰 건축 양식보다 자유분방한 면이 있습니다. 일단 탑사 곳곳에 보이는 돌탑 자체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물이니까요. 절의 이름도 저 수많은 돌탑(塔)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암석 중간중간의 크고 작은 구멍들은 암석의 약한 부위가 비바람으로 파여 만들어진 구멍인지, 그곳에 박혀 있던 큰 자갈 또는 바위가 비바람에 쓸려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구멍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둘 다가 아닐까 추측하여 봅니다.
마치 능소화나무가 암석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한여름인 8월 즈음에 방문하면 능소화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고목이기도 하고, 이곳에 햇볕이 드는 시간이 조금 짧은 편이기도 해서 꽃이 많이 피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에는 석가모니가 모셔져 있습니다. 오른손이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얹어져 있고 오른손 검지가 땅을 가리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 수인이 위에서 설명했던 항마촉지인이며, 저 불상이 석가모니임을 추론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산신각 안에는 당연히 산신령이 모셔져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산신령과 함께 모셔져 있는 흰 도포를 입은 좌상은 산신이 아니라 이 절의 실질적 창건자인 이갑룡 처사로 보입니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탑사의 모습입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대웅전 옆 조그마하게 삐져나온 작은 방의 기와는 전통 기와가 아닌 개량형 기와를 썼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진 가운데의 길로 더 올라가면 은수사가 나오는데, 금당사와 탑사를 살펴보는 데에만 많은 시간을 이미 써 버렸기에 은수사까지는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
탑사의 돌탑은 거센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잠시 '시멘트 같은 걸 끼얹나...?'라는 불경한 생각이 드는 저를 스스로 반성하여 봅니다.
탑이 있는 곳의 아래쪽에는 축조자인 이갑룡 처사의 좌상이 놓여 있습니다. 호칭이 왜 처사이냐 하면, 저분은 스님도 아니고 딱히 관직을 역임하지도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처사(處士)라는 명칭을 한자 뜻 그대로 풀어 해석하면 '집에 있는 선비'가 되는데, 실제 의미도 그와 비슷합니다. 요즘 낯선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스님이 아닌 남자 불교 신도를 처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돌탑과 절벽의 모습 모두 마이산이 아니면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라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명승지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절과 탑, 산이 모두 잘 어우러져 그 매력을 더욱 강하게 발산하고 있고요. 탑사와 은수사에서는 가끔 겨울에 하늘로 솟은 형태의 역 고드름이 생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자연현상의 하나일 뿐이기는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추운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금당사와 탑사를 모두 보았으니 다음에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바로 은수사 쪽으로 올라가 볼 생각입니다.
탑사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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