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관의 정의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르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정부(중앙행정기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며,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중앙행정기관은 연구개발과제를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을 수행하며 기획과 관리, 평가 등을 모두 지원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령대로라면 정부에서 이 모든 일을 다 수행하는 것이 맞지만, 이 경우 필연적으로 비대한 정부 조직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생하게 됩니다(이는 정부실패와는 다른 종류의 비효율성입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그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관료제의 형태로 운영되어야만 합니다. 요즘은 관료제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곤 하지만,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관료제의 장점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그것의 단점만이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료제는 거대한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유지 및 운영할 수 있는 제도이며,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고 운영해 본 조직의 형태 중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검증이 완료된 조직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장점이 뚜렷한 관료제이지만, 단점 역시 명확합니다. 관료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는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관료제의 단점이 더욱 부각되어 적용되기 때문에 비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관료제 하의 조직에서는 조직 내 전문가의 유지와 육성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규정과 절차의 평등한 적용은 조직이 전문가가 아닌 관리자와 매뉴얼을 중심으로 운영되게 만들고, 구조적으로 목표 달성의 실패를 용인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또한 업무능력 및 이해도의 향상과 부패 방지 등을 위해 관료제는 조직 내 인력 순환(업무전환)을 거의 필수적으로 실시하는데, 이 역시 전문가 육성에는 불리한 조건입니다. 반면 연구개발은 특정 분야만을 학습하고 해당 분야에서 주로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으며, 당초 추진목적의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결과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목표의 설정과 변경이 상당히 유기적입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는 연구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연구개발사업 업무를 전담하여 수행하는 조직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을 전문기관이라고 부르며,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2조(정의)에서 해당 기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4. “전문기관”이란 중앙행정기관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추진을 위하여 제9조부터 제19조까지, 제21조, 제31조제3항, 제33조제1항, 제34조제2항에 따른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행하는 기관으로서 제22조에 따라 지정된 기관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부 대신 전부 또는 일부를 대행하는 업무는 예고 및 공모(9조), 과제 수행기관 선정(10조), 과제 협약(11조), 수행 및 관리(12조), 연구비 지급 및 사용(13조), 과제 평가(14조), 과제 변경 및 중단(15조), 성과 소유 및 관리(16조), 성과 활용(17조), 기술료 관리(18조), 연구개발정보의 처리(19조), 연구보안(21조), 부정행위 조사(31조), 제재 처분(33조), 연구비 환수(34조)입니다. 업무 범위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추진계획 수립부터 사후 관리까지이므로, 연구개발사업의 수행을 전주기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전문기관과 연구개발기관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위에 언급한 과제 관리를 위한 일련의 활동을 수행하는 곳이 전문기관이며, 실제로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곳을 정의하는 용어가 연구개발기관입니다. 즉, 전문기관은 원칙적으로 연구개발활동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습니다(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많기는 합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 존재하는 주체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맡은 임무가 상이하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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