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가볼 만한 곳│광한루원│광한루
하지만 이처럼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원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큰 이미지는 사실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춘향전입니다. 남원에 다른 유명한 것이 없다기보다, 춘향전의 명성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학교에서 한 번쯤은 춘향전을 접할 수밖에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고전이자 판소리인 춘향가의 원전인 춘향전은 남원에 사는 기생의 딸 춘향과 양반가의 아들 이몽룡 간의 사랑을 다룬 소설입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상당히 수위가 높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 읽었을 때 십 대 후반 남녀의 사랑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조상님들의 정열(?)에 절로 감탄이 들었으니까요.
광한루는 평지에 만들어진 누각이며, 주변부에 호수를 파는 등의 정비를 통해 그 매력이 극대화된 장소입니다. 그래서인지 남원시에서는 광한루 주변을 정비하여 광한루원이라는 공원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광한루원의 정문입니다. 솟을대문(평삼문)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4천원(어린이 1,500원)이며 남원시민은 무료입니다. 어른 기준으로 입장료를 내면 남원 지역화폐인 남원사랑상품권 2천원을 주며,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합니다.
현판에는 청허부(淸虛府)라고 적혀 있습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조선 세종 때(1434년) 정인지가 누각을 중건하면서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명칭에서 따 온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광한청허부는 중국 신화에서 달에 사는 신선인 항아(姮娥)의 거처인 궁전(월궁, 月宮)의 이름 중 하나입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잘 정비된 잔디밭입니다. 조형물의 두 남녀는 아마 춘향과 몽룡이겠지요. 멀리 완월정이 보입니다.
광한루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길로 이동해야 합니다.
광한루 앞에는 호수가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인데, 호수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작은 섬 안에 있는 정자는 영주각이라고 합니다. 영주라는 이름은 중국 전설에서 신선들이 산다고 알려진 삼산인 봉래(蓬萊)산, 방장(方丈)산, 영주(瀛州)산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호수는 광한루 명칭의 유래에 빗대어 은하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광한루에서 바라보는 호수를 달에서 바라보는 은하수에 비견하며 시조를 지었을 수많은 옛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합니다.
화려한 모습을 가진 새가 수컷이고, 어두운 색이 암컷입니다. 전통적으로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사실 일부일처제가 아닙니다……. 뭐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문화적으로 백년가약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천연기념물이니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합니다.
대형 누각을 세울 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누각의 하중을 버티는 일입니다. 전통 건축에서는 기둥의 수와 두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광한루는 단단한 돌기둥을 이용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돌기둥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며 매우 단단하고 압축력에 잘 버티므로 기둥에 적합한 소재입니다.
광한루는 전면 5칸, 측면 4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넓이 488㎥, 높이 19m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유명한 대형 누각들인 경회루(931㎥)와 영남루(694㎥)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며, 촉석루(509㎥)와 유사한 넓이입니다. 물론 누각의 가치가 넓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비교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누각 옆에는 온돌방이 있었습니다. 아마 손님이 왔을 때 누각에서 맞이하고 숙박도 바로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굳이 손님이 아니더라도 숙박을 할 수는 있었겠지요.
누각 북쪽에는 누각에 출입하는 통로인 월랑(月廊)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통로는 19세기에 만들었는데, 당시에 누각이 점점 북쪽으로 기울고 있어 이를 보강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기둥을 더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감싼 통로를 만듦으로써 누각의 외관을 보다 화려하게 보강하고 안전성도 확보한 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옥 건축물에 구경을 오면 항상 찍게 되는 처마 사진입니다. 부연의 화려함이 돋보입니다. 아래 현판에는 호남제일루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영남제일루라는 명칭은 밀양의 영남루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삼남 지방 중 충청도만 호서제일루 이름을 붙일 대표적인 누각이 없나 봅니다.
겹쳐 있는 처마가 누각의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남루에도 월랑이 있지만 건물 사이에 있어 측면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는데, 광한루의 월랑은 삼면에서 모두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누각에 실제로 올라가 볼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누각들 대부분이 출입을 일부 통제하기는 하지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있는데, 광한루는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움이 많이 들더라고요. 누각 주변의 조경은 누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고려하여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광한루 남쪽의 호수 역시 누각에서 바라보는 것을 전제로 모양을 잡아두었을 텐데…… 그저 아쉽기만 하네요.
광한루 북쪽에는 많은 비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남원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적비와 선정비를 모아 둔 곳이라고 합니다. 남원은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된 지역입니다. 도호부는 인구가 많은 지역에 설치되는 행정 구역이었는데, 남원은 전라도 동부의 중심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비석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광한루 남서쪽 호수에는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위에 호수가 은하수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에서 다리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전래되는 이야기 중 은하수에 다리가 놓이는 유명한 이야기는 딱 하나뿐입니다.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만드는 오작교입니다. 저 다리의 이름 역시 오작교입니다.
호수 앞에는 자라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북이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보고 다시 보니 배갑의 볼록함이 높지 않고 넓게 퍼진듯한 모습이므로 자라를 연상하고 만든 석물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광한루 앞 호수에 전설상의 삼산을 본떠 세 개의 섬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 나쁜 일이 계속 생겨 한서(漢書)의 고사에 따라 자라돌을 두었더니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설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저 섬들과 이 자라돌을 만든 사람은 당시 전라도관찰사였던 정철이라고 합니다. 정철은 정치인으로서는 나쁜 평가를 받는 사람인데, 남원에 남아 있는 그의 이야기도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송강 정철은 선조 대의 인물이고, 광한루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는데 불타버린 누각 앞 호수의 조경을 굳이 새로 꾸미지는 않았을 것이니 정철이 저 섬들을 만들고 몇 년 뒤에 광한루가 불타버렸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정유재란이 정철 탓은 아니지만, 저 난리를 쳐 가며 꾸민 조경을 몇 년 즐기지 못했다는 썩 유쾌하지 못한 결론이 나오네요.
호수 서쪽에서 바라본 광한루와 오작교의 모습입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전설의 삼신산을 품고 있는 은하수에 비유되는 호수입니다. 아직 추울 때라 식물이 우거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상당히 운치가 있습니다. 위에서 비판조로 쓰기는 했지만 호수 가운데의 섬들이 호수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 전체 경관 측면에서는 더욱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한루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훨씬 다채로웠을 것이고요.
남원시에서는 광한루 주위 조경을 정비하며 춘향전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볼거리를 추가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월매집과 춘향관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게시물을 참조하여 주세요.
광한루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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