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 작성 방법 - 1. 작성 시의 유의점


기획서 작성 방법



  기획서는 "어떤 일이나 사업을 꾀하여 계획한 내용을 적은 서류."를 의미한다고 우리말샘(국립국어원의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구어체적인 표현으로 풀어쓰자면, '나 또는 특정 조직이 이 일을  꼭 해야 합니다'라는 주장을 하는 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이 담겨 있다'는 점이 기획서와 보고서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단순히 특정 사안에 대한 현황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기획서는 현황 정보를 해석하여 향후의 행동 방향을 제안 또는 제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서가 학교에서 배우는 설명문과 비슷하다면, 기획서는 논설문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획서에는 작성자의 정보 해석 결과나 가치 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되며, 그 글을 읽는 사람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다 비판적으로 문서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기획서를 작성할 경우 ①배경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②글의 논리적 구조가 치밀해야 하며, ③도출된 결과가 허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④기타 주요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합니다. 각각의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공개된 데이터만을 가지고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여 설명하므로 예시가 다소 조악하고 극단적인 면은 감안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① 배경 지식이 풍부해야 함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알고 있거나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협소한 수준의 자료에서 도출되는 결론을 현실에 적용할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에 위치한 밭의 침수를 막기 위한 빗물 방지턱을 만드는 일에 대한 기획을 한다고 가정하고, 기상청에서 2020년 서울 지역의 강수량 분석 자료를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어차피 가정이므로 원활한 이야기 흐름을 위해 밭 주변의 지형은 평평하여 고저차가 전혀 없고, 물 빠짐은 매우 원활하다는 등 강수량 외 밭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없다고 정의합니다. 2020년 서울의 총강수량은 1651.1 mm 이므로 365 일로 나누면 4.52 mm/일 의 평균 강수량이 나오고, 빗물 방지턱을 5 mm 높이로 세우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을 경우 어떠한 결과가 나오게 될까요.


2020년 일별 서울 강수량 자료


  빗물에 쓸려나가는 아름다운 밭의 모습을 초봄을 제외한 일 년 내내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빗물 방지턱의 높이가 5 mm 수준이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뻔한 상식이므로 너무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므로 이제 1년 최고 강수량을 기준으로 110 mm 짜리 빗물 방지턱을 세운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번에는 110 mm 짜리 높은 방지턱을 세우느라 비용을 많이 지불하였는데, 빗물은 방지턱의 절반도 차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의 자료에 표시되지는 않지만, 여름철에 비가 정말 많이 오는 시기에도 시간당 강수량은 30~50 mm 가 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시간당 강수량이 30 mm 만 넘어가도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의 호우가 왔다고 보도되곤 합니다. 물 빠짐이 원활하다면 절대로 이 높이까지 물이 찰 리가 없습니다. 그럼 이제 통계고 뭐고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50 mm 짜리 빗물 방지턱을 세우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1904년~2020년 일별 서울 강수량 자료

  통계가 측정되기 시작한 1904년부터 2020년까지의 강수량 분석 데이터입니다. 엑셀로 데이터를 받아 보면 하루에 300 mm 이상의 강수량이 측정된 날이 3일이고, 250 mm 이상인 날도 11일이나 있습니다. 흔히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폭우'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50 mm의 빗물 방지턱으로는 침수를 막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이제 '방지턱을 높게 세우는 비용'과 '10년에 한 번 오는 폭우로 침수되는 비용'을 비교하여 어느 쪽이 효용이 높은지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잘 모르는 분야의 자료를 어설프게 조사하여 기획서를 쓸 경우 많은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조직들은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전문성이 있는 타 기관의 분석 또는 컨설팅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기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항상 전문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수도 있고,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한 기획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배경 지식에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 경우에는 최대한 본인이 배경 자료를 수집하고, 비슷한 분야 또는 기획서를 제출하여야 하는 조직의 이전 기획 자료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도 항상 마음에 염두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② 글의 논리적 구조가 치밀해야 함
  위에 계속 언급한 바와 같이 기획서는 주장을 하기 위한 글입니다. 근거가 되는 배경 지식을 잘 확보하였더라도, 그 근거들을 어설프게 엮으면 주장하는 내용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기획서를 작성할 경우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들이 대부분 이 단계에서 나옵니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하였는데, 막상 기획 방향을 설정할 때 그 자료들을 쓰지 않고 첨부만 하거나 작성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근거로 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2012년~2018년 국내총생산 및 경제성장률

  만약 위의 데이터만 가지고 '2012년부터 2018년 2분기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은 점차로 개선되었으므로 국내 시장 판매 촉진 방안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엄청난 반박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주장은 ①GDP의 증가가 국민 소득의 증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②국민 소득의 증가는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③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면 국내 시장이 확대된다, ④ 시장이 확대될 경우 구매력도 증가한다, ⑤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은 구매력이 증가할 때 판매 촉진을 하면 판매량이 증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다섯 가지 가정을 당연한 사실처럼 근거해야 성립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기획서를 읽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위의 당연한 사실처럼 가정한 숨어 있는 저 전제들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물론 이미 보고하는 사람이나 보고받는 사람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당연한 가정이라면 해석을 굳이 써서 기획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소한 GDP의 증가가 국민들의 삶의 질 또는 구매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근거 자료와,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특성 등을 추가로 조사하여 근거로 제시해야 합니다(아마 이렇게 조사를 해 가도 추가로 근거가 더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0년~2019년 대한민국 지니계수 추이

  이번에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우리나라 지니계수 추이입니다. 지니계수가 0.4 이하이므로 소득격차가 크지 않고, 그 수치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므로 소득 불평등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해석한다고 가정합시다(물론 지니계수 자체의 한계도 있고, 소득 불평등을 다루는 다른 지표들도 있지만 그러한 점은 일단 무시하겠습니다). 위의 GDP 추이와 지니계수 추이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은 완만한 증가 추세이며, 소득의 불평등도 크지 않으므로 우리 회사는 향후 중산층을 집중 공략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먼저 ①소득의 불평등이 심하지 않다고 하지만 소득 수준 계층별 구매력이 어떤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고 ②그 구매력이 우리 제품의 구매와 연동되는지, 제품의 선호도는 어떤지 등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여전히 빠져 있으며 ③해당 타깃을 공략하였을 때 회사가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정보가 모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위의 예시는 일반적이고 국가 수준의 거시적인 정보만으로 개별 기업의 행동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 자체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예시이기는 합니다. 다만 평소라면 당연하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넘어갈 수 있는 사안들이 기획서를 작성할 때 근거로 쓰인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건들을 검토한 후 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렇게 확인이 된 자료만으로 글의 논리적 구조를 구성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예시로 사용하였습니다.

③ 도출된 결과가 허황되어서는 안 됨
  앞의 두 문제점을 잘 피했더라도 자료 해석 시 허황된 결론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허황된 결론'이란 조직의 자원으로 실행할 수 없는 결론 또는 법적,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결론 등을 의미합니다. 위 1항에 예시로 든 자료를 바탕으로 '빗물로 인한 침수 방지를 위해 밭에 돔 형태의 유리온실을 건설하자'나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인공 강우를 실시하여 강수량을 분산하여 침수를 막자'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거나, 2항의 예시를 바탕으로 '고객의 소득정보를 수집하여 구매력이 있는 고객에게만 판촉행사를 하자', '소득 수준이 일정 이하로 보일 경우 매장 출입을 제한하고 구매 상담을 거부하자'와 같은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인 예시이므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매우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검토 과정에서 조직의 역량 및 사회 통념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이와 같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④ 기타 주요 사항
  기타로 묶기는 했지만 사실 이 항목이 제일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①~③번 항목은 통상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 항목은 비 정형화된 사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승인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 이 기획서를 승인하여 줄 사람 또는 기관의 성향이 어떠한지를 미리미리 파악합니다. 상당수의 기획서가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지만 그냥 일을 할 수는 없으므로 근거를 만들어야 할 때' 작성되고 있습니다. 본인의 기획 업무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지 사전에 잘 파악하여야 합니다. 눈치 없이 승인자가 바라는 결론과 다른 결론을 도출하지 않도록 합시다.
* 이 경우 본인은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은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승인자를 잘 설득해서 결론을 바꿔보거나, 기획서에 '이대로 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음'같이 빠져나갈 여지를 두는 것도 좋습니다.
- 승인자가 선호하는 문서 양식을 파악한다 : 해당 기획을 승인하는 사람 또는 조직이 익숙한 문서 양식이 있습니다. 워드로 엄청난 기획서를 만들었더라도 승인자가 PPT 형태에 익숙하다면 일단 형식에서 큰 손해를 봅니다. 자사의 양식보다 경쟁사의 양식이 멋지다고 그 양식을 활용하여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 공고를 통해 기획서를 모집할 경우 하다못해 주 활용 색상, 글자체, 글자크기 및 줄 간격조차 세세하게 지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문서 작성 이전에 양식을 미리미리 파악하여 두도록 합시다.
- 책임 소재를 잘 따져본다 : 이 기획서가 통과되어 실행되었지만 실패하였을 경우 어떠한 문제가 생길 것인지, 그리고 그 문제의 파급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고민하여 봅니다. 만약 조직 또는 본인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갈 것 같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최대한 설정합니다.
- 복수의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나 검토한다 : 원론적으로 기획서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명확하게 도출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실제로도 그러한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승인자가 복수의 선택지를 원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몇 가지의 선택지를 우선 제공하고, 승인자가 결정하는 방향으로 최종 기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이 무난합니다. 승인자가 결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기획서를 검토하므로 최종 검토 시 작성자의 부담이 경감되는 장점도 있고, 결정 과정에서 승인자의 취향이 반영되므로 무난하게 승인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 최대한 표와 그림으로 표현한다 : 글로만 작성된 기획서는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개조식으로 작성하였다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표나 도표, 그림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자료는 반드시 해당 형태로 표현합니다.
- 배경지식을 단순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자료를 검토하는 것은 기획의 승인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용어를 아무 설명 없이 사용하거나, 근거가 되는 자료를 본문에 길게 붙이는 것은 승인자의 가독성을 심하게 저해시킵니다. '내가 많이 알고 있다'나 '엄청난 양의 자료를 심도 있게 조사 분석했다'를 강조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독성을 희생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문용어는 가급적 승인자가 알 만한 용어로 바꾸거나 주석을 붙인 뒤 사용하고, 근거자료는 본문에 요약한 결과만 보여 주되 승인자가 검토 또는 검증할 수 있도록 문서 후단 또는 별도의 자료로 첨부하여 제공합니다.

……작성하다 보니 왠지 슬퍼지는 항목입니다. 무언가 중요한 부분을 놓쳤을 수도 있으므로 피드백을 주실 경우 해당 항목을 추가 또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획서는 워낙 폭넓게 사용되고, 분야나 형식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작성 전의 일반적인 유의사항을 적기만 해도 상당한 분량이 나오네요. 인터넷에 기획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으므로 이 내용은 다른 분들의 문서를 참고하시는 것이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단순한 생계형 기획서만 작성해 보았기 때문에 지식이 일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의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 기본적인 사항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므로 해당 내용을 간단히 작성하여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이제 기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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