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8

울산 가볼 만한 곳│학성공원(울산왜성)│중앙부(본환 및 외곽)


 학성공원(울산왜성)

 • 공원 동측(입구 및 노대)

 • 공원 북측(이지환 및 삼지환)

 • 공원 중앙부(본환 및 외곽)


  앞선 게시물에서 학성공원의 동쪽과 북쪽, 왜성의 입구, 노대 및 이지환과 삼지환 부근을 살펴보았습니다. 공원 동측 관련 게시물에는 울산왜성의 역사를 간략하게 기재하여 두었으니 해당 내용이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이전 게시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학성공원 및 울산왜성 지도
  이제 공원에서 제일 높은 학성산의 정상 부근, 울산왜성의 본환(本丸, 혼마루(ほんまる)) 터 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정상부 공원
  본환이 위치하던 정상부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왜성을 건축하며 이 부근의 터를 모두 평탄화하여 두었을 테니 공원으로 꾸미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본환 안내판
  본환에 대한 안내판입니다. 일본 성의 상징과도 같은 천수각은 원래 없었다고 하네요. 크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참고 사진의 담장( 土塀, 도베이(どべい))이 구마모토성(熊本城)이라는 점이 잠시 눈길을 끌었습니다. 울산왜성과 구마모토성의 축성자 모두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이기 때문입니다. 구마모토성은 가토가 울산왜성에서 수성전을 치를 때 얻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농성이 용이하도록 여러 가지 시설을 추가하였다고 하며, 실제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절 발생한 서남전쟁 당시 정부군이 구마모토성에서 거의 두 달간 수성에 성공하였다고 하네요.

정상부 자연석
  비록 정상 부근을 평탄화하였지만, 거대한 자연석 몇 개는 어쩌지 못하고 그냥 둔 것이 보입니다.

태화강
  멀리 태화강이 보입니다. 이곳이 왜성이었을 때는 태화강이 바로 옆까지 와 성의 보급 및 방어에 도움을 주었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지나 지형도 바뀌었고 하천 정비 사업도 진행하였기에 이렇게 거리가 벌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보리이시가키
  아래쪽으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のぼりいしがき)가 보입니다. 이전 게시물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했었지만, 저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세로로 건설하였는데, 적으로부터 배를 대는 선입지(船入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입니다. 노보리이시가키때문에 선입지로 적이 쉽게 접근하는 것이 차단되고, 성 외부에서 선입지의 모습을 쉽게 관찰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지금 보이는 것과 같이 본환 쪽에서는 노보리이시가키 주변이 훤히 보이므로 다가오는 적을 견제하기도 용이하고요.

예전 학성공원 안내판
  주변부에는 예전에 세워 두었던 돌로 만들어진 학성공원 관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안내문
  원래 이곳에는 통일신라시기 만들어졌던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이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울산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북측 가장자리 안내판
  공원 북측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안내판입니다. 이 표지판이 서 있는 언덕 아래 역시 이지환의 일부로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설정되어 있는 구역에 따라 안내판을 세워둔 것 같았습니다.

공원 입구 쪽에서 바라본 정상부
  산 정상부 공원, 본환 자리를 본환의 입구 쪽에서 넓게 바라본 모습입니다.

본환 입구 근처
  사실 본환 내에 만들었었던 건물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위에서 더 볼 만한 시설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본환 입구 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본환 입구
  본환 입구 쪽의 성벽 유구는 꽤 남아 있는 편이었습니다.

본환 입구 망루 터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부위에 비해 잘 남아있는 편이라는 이야기이지, 보존 상태가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본환 망루(櫓, 야구라(やぐら)) 부근의 성벽 역시 상당 부분이 붕괴되었고, 흙이 노출된 부분에서는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본환 입구 성벽 유구
  하지만 기본 성곽의 형태는 남아 있다 보니 공원 여기저기에 급경사면이 꽤 많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본환 외곽부 평지
  본환 입구 쪽으로 가면 갑자기 전망이 트여 주변부를 살펴보기 좋은 장소가 나타납니다.

외곽부 토성터 안내판
  현재 남아있는 울산왜성은 주곽부(主郭部)뿐이며, 주곽부 아래의 평지에는 2.7km 길이의 토루(土壘, 흙벽)와 해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흔히 성곽 건축에서 외성(外城)으로 지칭하는 시설물인데, 일본에서는 소가마에(総構え, そうがま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에서야 성 근처 마을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왜군이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왜성에 저런 시설을 만들었을 리는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성의 방어력 보강을 위해 만든 시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984년 이전까지만 해도 토루 부위가 남아있었지만, 토지구획사업으로 모두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요산대 안내판
  정유재란 이후 왜성은 군사적 시설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각종 방어시설이 철거되고 난 뒤의 왜성 터에는 산중턱마다 석축으로 보강한 넓은 평지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들이 가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방금 살펴보고 온 본환 터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요산대 석비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의 선비인 김홍조 님께서 주변을 바라보며 즐기기 좋은 장소라는 뜻의 요산대(樂汕臺)라는 비석을 세워 두었다고 합니다. 괜히 사족인 것 같지만, 樂자를 '락'이 아니라 '요'로 읽는 이유는 '요산대'의 의미를 해석할 때, 汕자를 파자하여 강(氵)과 산(山)을 좋아하며 즐기다(樂)라고 풀이하기 때문입니다. 논어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인 요산요수(樂山樂水)와 같은 의미의 사용례입니다.

매몰된 성벽 유구
   아마 나무 뒤쪽 흙으로 덮인 부분을 파 보면 성벽 유구가 더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본환 진입로
  본환 입구 쪽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돌계단이 있어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왜성으로 기능하던 때에는 당연히 마스가타코구치(枡形虎口, ますがたこぐち)와 이층으로 설치한 문인 야구라몬(櫓門, やぐらもん)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본환 주변부
  본환 부근에서 딱히 더 볼 것이 없었으므로 공원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따라 돌아보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아있는 왜성 유구
  본환 입구 부근과 동편의 성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왜성 유구는 돌무더기처럼 드문드문 남아있었습니다.

본환 입구 측면의 왜성 유구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왜성 본환 부근 여기저기 남아있는 성곽 유구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왜성 유구라는 것을 모르고 보면 어떻게 보아도 그저 돌무더기나 석축의 잔해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산책로
  날씨도 좋고, 공원도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참 좋은 장소였습니다. 산책을 즐기며 군데군데 남아있는 왜성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고요.
  이전 게시물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큰 규모의 공원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살펴볼만한 왜성 유적이 많아 게시물을 분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내용을 더 확인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울산왜성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공원3길 54

울산광역시 울산관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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